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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는 일이 밥상 노동이 되지 않기를

사랑으로 짓는 밥

by 우선열

밥상 노동은 그 강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평가된 노동 중의 하나이다

평생 쉬지 않고 오르고 내리는 밥상을 위해 가족 중 누군가는 매일 부엌에 선다.

하루 세끼를 차려내는 일은 생의 마지막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도

세 남매의 엄마는 밥 하다가, 밥 하다가 죽었다

압력밥솥에 밥을 올려놓고 자는 듯 세상을 떠났다.

죽어야 밥에서 해방되는 삶이라니

(생활공간에 대한 단상을 모은' 모든 순간의 공간들' -이주희 -)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에 소개되었던 문구이다.

밥상 노동이라는 말이 새로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 시대엔 밥상을 차리면서 노동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다고 본다.

가족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었고

밥을 하다 죽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지만, 막상 글로 써놓은 걸 보니 처량하기는 하다.

밥 하는 것을 노동으로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밥 하다 죽은 것이 아니라 일하다 죽은 것이 된다.


주부들이 밥을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이다

제 새끼 입에 먹을 것 들어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일이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라든가 엄마는 배부르다던가, 하는 말들이 싫지 않았다

나는 주린 배를 부여잡아도 가족들 먹는 모습이 흡족한 것이 엄마이다.


주부이어도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이 자신의 탓 같았다

삼시 세끼 먹거리를 만들면서 먹거리가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했다

어머니들은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먹을 것이 떨어져 새벽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가야 할 때도 가족들 먹거리만큼은 챙겨 놓았다.


전문직 여성은 슈퍼우먼이어야 했다

바깥일을 잘하면 "밥은 해 먹고 다니나?""화장은 하면서 집구석은 엉망으로 해놓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견뎌야 했고 때로는 살림을 팽개친 여자라는 수모를 견뎌야 했다

남편과 똑같이 일하면서 때로는 수입이 남편보다 더 많기도 했지만, 여전히 집안일은 여자 차지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남자들이 도와주기는 한다. 도와주니 다행이다. 다만 도와줄 뿐이다

여전히 집안일은 여자 책임이고 도와주는 일에 감사해야 한다.

돈을 버는 일도 집안일도 모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가족을 위해서 맛있는 밥을 짓는 일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는 건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은 일방통행이어서는 안 된다.

잠시는 가능할지 몰라도 일방통행인 사랑이 지속할 수는 없다.

사랑은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를 깨달아야 한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상호작용이 아니다.

일방적인 희생이다

일방적인 희생은 오래갈 수 없다,

사랑의 본질인 상호작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줄어들고 젊은이들이 결혼을 피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여자들이 집안일에만 매여 있을 때는 힘들어도 견딜만했다

가족을 위한 식사 준비는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일 수 있었다

여자들의 사회생활이 보편적으로 된 지금,

고된 바깥일에 시달리고 다시 집안일을 해야 한다면 사랑으로만은 되지 않는다.

시간을 쪼개야 하고 체력이 뒤따라야 한다.


예전처럼 밥 하는 주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다

다행히 편리한 가전제품도 있고 간편식, 외식도 많은 세상이다.

주부에게 가사 일을 전담시키지만 않으면 집안일과 사회생활을 동시에 꾸려나갈 만은 하겠다.


문제는 아직도 집밥을 못 하는 여자들을 백안시하는 풍조이다.

밥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는 사람도 있다며 은근히 압박한다.

바깥일을 하는 여자라면 누구나 겪어 본 일일 것이다

잘 못 한 일은 없는데 주눅이 들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자존감 떨어지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사랑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니 말이다

일해야 밥을 먹을 수 있는 돈도 벌고 자존감도 회복할 수 있으니

결혼 대신 일을 선택하게 된다.


우리 시대처럼 출산과 육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즐거움을 알게 하고 싶다

우리 시대처럼 자장면도 못 먹는 어머니로서는 아니다.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존감을 지니고 어머니로서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집밥이 여자만의 책임이어서는 어려운 일이다.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요즘은 전업주부나 요리하는 남자가 인기 있는 시대이다

바람직하지만 아직은 쟁점이 되는 정도이고 여전히 이면에는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슈퍼우먼 시대는 지났다.

행복한 젊은이들, 우리의 아이들을 보고 싶으면 밥상 노동에 얽매이게 해서는 안 된다.

집밥은 같이 해야 맛있고 맛있는 음식을 고르는 능력도 중요하다.

사 먹는 음식도 건강하고 맛있어야 한다.

정성껏 만든 좋은 음식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일하며 돈을 벌 수 있고

일하는 주부들은 밥상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밥 짓는 일이 더 밥상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을 위해 밥을 짓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행위여야 한다.

여자의 일이아니고 가족의 사랑의 행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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