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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의 계절, 갱갱이 죽이 그립다

by 우선열

음식 맛은 기억이라 한다

먹어 보아야 맛을 알고 익숙해진 맛을 친근하게 느낀다

이맘때 겨울이 깊어지면 집집마다 고유한 김치찌개를 끓이게 된다

멸치나 돼지고기를 넣고 끓이기도 하고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도 있다

김치가 맛있으면 어떻게 끓이건 김치찌개는 맛있다


나는 충청북도에서 자랐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곳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요즘처럼 교통도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으니

고향에서는 싱싱한 생선을 먹을 수가 없었다

말린 명태나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 굴비 등이 고작이었다

명절 무렵 엮인 굴비가 한 두릅, 부엌문에 걸리면 공연히 신이 나 부엌을 들락이었다

구운 굴비도 맛있었지만 굴비에 고사리를 깔고 찜을 해주시면 아주 맛이 있었다

하얀 살의 보드라운 감촉이 지금도 입안에 감도는 듯하다

어머니는

"느이 아버지는 비린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나는 바닷가에서 자라 물고기를 많이 먹었는데···"

하시곤 했다. 엄마는 충청남도 예산 사람이다


김장 때가 되면 엄마는 고향 타령을 조금 더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젓갈이 든 김치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황석어젓을 끓여 내리시며 혀를 끌끌 차시며

"외 할아버지는 젓갈 든 김치를 좋아하셨어, 생선 토막을 김치에 넣으면 감칠맛이 그만인데···

익으면 생선 살이 뭉그러져 김치가 아주 맛있어져"

하시곤 했다

아쉬워하시기는 했지만 김장은 아버지의 입맛에 맞추어 담그셨고

우리는 충청도 김치 맛에 익숙해졌다

우리 집 김치는 젓갈이 아주 조금 들어간 싱싱한 김치이다

김철 맛이 있는 전라도 김치와는 다르지만

늦게까지 시원한 맛을 내주니 구정 지나서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겨울 초입에 갓 담가낸 우리 집 김치는 쌉싸름한 맛이 감돈다

충청도 김치가 맛없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인 것 같다

조금 커서 다른 고장, 특히 전라도 김치를 먹어 본 후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했으니

충청도 김치가 맛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는 지금 충청도 김치가 그립다

쨍하게 시원하기도 하고 뒤에 감도는 쌉싸름한 맛도 그립다

역시 맛은 경험에서 터득되는 것 같다


겨울 철이 되면 엄마는 김치찌개 보다 김칫국을 끓여 주시곤 했다

김칫국은 오래 끓일수록 맛있어진다

커다란 냄비에 김치와 물만 넣고 끓여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엄마는 가끔 멸치를 몇 마리 넣기도 했다

말씀이 별로 없으신 아버지는 멸치가 든 김칫국은 멀리 밀어놓으셨다

음식 타박은 안 하셨으니 쓰다 달다 탓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잡수시지 않는 걸로 확실하게 의사 표시를 하신 것이다

멸치를 건져내고 드려도 아버지는 용케 맛을 알아내셨다

그런 날이면 엄마의 비린 것 타령이 이어졌다


우리 엄마는 외동딸이었다

양자로 들인 외삼촌과 업둥이 이모가 한 분 계셨지만 외할머니에겐 하나뿐인 귀한 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양자 외삼촌과 엄마를 비교하시며 영특한 엄마를 외삼촌이 못 따라가면

"딸년이 ···" 하시며 못마땅해하셨고 외할머니는 그런 외할아버지를 서운해하셨다

엄마는 엄마의 입맛에 맞추어 상차림을 해주던 외할머니가 그리우셨을 게다

엄마의 비린 것은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인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이 들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세상이 좁아졌다

제자리에 앉아서 팔도 음식을 고루 맛볼 수 있는 시대이다

전라도 김치와 강원도 나물, 육고기, 생선회가 한 상에 차려진다

전라도 김치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생선회에 놀라기는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골라 먹을 수 있다

풍성해진 식탁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만 점점 더 자극적이고 감칠맛을 추구하다 보면

어릴 적 먹거리가 그리워진다


이맘때면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김칫국이 그리워진다

큰 냄비에 끓여 놓고 데우고 또 데우며

오래 끓이다가 마지막에 밥을 넣고 끓인다

우리 고장에서는 그것을 갱갱이 죽이라고 불렀다

추운 겨울날 밖에서 온몸이 꽁꽁 얼어 집으로 들어와

엄마가 끓여 주시던 갱갱이 죽을 먹으면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녹았다

갱갱이 죽은 오래 끓여 김치도 밥알도 부드러웠다

훌훌 넘길 수 있는 그런 맛이다

마음이 추운 날이면 더 그리워진다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이는 김치찌개

참치로 맛을 낸 김치찌개가 맛있어 우선 먹기는 입에 달지만

엄마가 끓여주던 갱갱이 죽처럼 그립지는 않다

이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음식 맛은 기억이고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다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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