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우기

어지러운 심사를 달래며

by 우선열


심사가 어지럽기는 하다. 비워내야 할까? 마음도 몸도 텅 빈 허수아비 같다면 살아 있는 의미는 뭘까? 살아 숨 쉬고 있다면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걸 내려놓고 숨만 쉬고 있다면 그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이 70이면 마음 가는 대로 행해도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고 모든 걸 내려놓고 쉬어야 할 때라고도 한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아무 일 없이 햇살 밝은 창가 흔들의자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꿈꾸었다. 세속의 모든 것에서 벗어난 평온 한 모습이고 싶었다. 아직 그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아 버렸지만 내 마지막 모습은 그랬으면 좋겠다. 고통에 찌든 채 침상에서 숨을 거두거나 비명 횡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어느 시인처럼 소풍 즐거웠노라고 가볍게 인사하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건 마지막 순간에 이루고 싶은 꿈이다. 그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르는 우매한 인간이니 살아 숨 쉬고 있는 동안은 인간다워야 한다. 살아내야 하건만 해야만 하는 일이 없어진 은퇴 후이니 무언가 한다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노후 준비가 우선은 건강과 노후생활자금준비에 있지만 외로움을 극복하는 일도 중요하다. 애써 준비해 놓은 자금과 건강이 외로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곤 한다. 고립되지 않으려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친구가 하나 둘 사라지는 참담함을 겪을 때에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비교적 쉽게 극복해 낼 수 있고 일을 통해 새로운 친구가 생기기도 한다.

내게는 글쓰기가 있으니 부족한 노후 준비에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욕망이 있다는 말과도 같다. 해결해야 할 일들이 따라다닌다. 글쓰기 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았지만 써놓은 글들을 보면 책을 엮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게 욕심인 걸까? 마음을 비우고 하고 글만 써야 하는 걸까? 글은 읽는 사람이 있어야 글로서의 소명을 다 하는 것이라 한다. 읽히지 않는 글은 세상에 나오지 않는 글과 같다. 애써 써 놓은 글을 이대로 사장시키고 싶지는 않다.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후부터 이런저런 걱정에 휩싸이고 있다. 우선은 노후 빠듯한 살림살이에서 책을 만들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 문제다. 뭐 하냐고 돈도 못 벌어 놓았나 후회막급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노후자금 준비는 제대로 못해 놓았더라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문제는 자부심이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책을 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원초적인 문제까지 들먹이며 고민해야 한다. 허수아비 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으니 많은 걱정거리가 쌓이더라도 해결해 나가 보려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안락의자에서 흐뭇한 미소를 띠려면 숨 쉬는 동안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하다 보면 해결책이 생기기도 하고 방법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걸 위해 최선을 다 할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다.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죽은 삶이다. ' 잘한다 선우,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네 삶이 멋진 삶이야, ' 어지러운 내심사를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