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과 치매

by 우선열

나이 든 여자의 건망증이야 새삼스러운 일 아닌 일상의 일이다.

냉장고에서 리모컨이 나와고 신발장에서 지갑이 나와도 그러려니 넘겨 버린다.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는 나중에라도 알게 되며 건망증이고 끝까지 알지 못하면 치매라고 하는데

요즘은 그 경계선에 서있는 것도 같다.

치매를 듣기 좋은 말로 인지 장애라고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친한 친구가 경도 인지 장애 판정을 받았다

친구는 치매가 아니라 경도 인지장애 일뿐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차마 치매 초기 증상이라고 말할 수 없어 나이 들면 누구나 경도 인지장애쯤 겪고 있으니

앞으로 더 나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위로했다.


친구와 같이 참석한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 인지장애가 치매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야야, 그럼 내가 치맨가?" 하얗게 질려 친구가 내게 말했다

'아니야 경도 인지 장애잖아, 아직은 건망증이야, 우리 또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건망증은 있어, 미리 정할 것 없어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치매가 될 수 있으니 열심히 운동하고 조심해야지""

'그렇지, 그래도 난 조금 심한 거 같아,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

"나도 그래, 그걸 어떻게 기억하니? 매일 먹는 밥을"

했지만 그녀가 걱정스럽기는 하다

나는 금방 대답은 못하지만 조금 생각하면 무얼 먹었는지 기억해 낼 수 있다

친구는 누구와 무얼 먹었다고 이야기해 줘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한 시간 정도만 같이 있으면 그녀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만다

친한 친구들이야 이해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던가 젊은 사람들은 오해하기 쉽다.

모임에서처럼 단정적인 말이 오갈 때 친구의 절망하는 모습을 차마 보기 힘든다

"무슨 걱정이야, 치매 치료 약 나왔대 아직은 비싸지만 곧 상용화되면 가격도 안정되겠지"

"아들하고 삼천만원 짜리 주사 예약해 놓았어"

"잘했어, 요즘 약이 좋아졌다니까 치료하면 적어도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야,

너무 예민한 것보다 적당히 잊고 사는 게 마음이 편할 수도 있어"

이렇게 친구를 위로 해왔다

그게 바로 나한테 필요한 위로였던 것 같다


나는 지금 내가 건망증이냐 치매냐를 의심하고 있다

그 날, 저녁 6시가 지나서 휴대폰에서 코레일에서 49000원이 출금 되었다는 문자를 보았다.

'코레일? 철도 회사에서 무슨 일이지? 예약 한 적 없는데, 당분간 철도여행 계획도 없고···'

확인차 은행에 전화를 했더니 카드 출금이라며 카드회사를 연결해 주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절차도 있었다.

카드회사는 다시 코레일 전번을 가르쳐 주었다

그 번호에서는 여섯시가 넘어 내일 아침에나 확인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철도와 관련된 지출을 한 적이 없었다

문득 엄마 기일이 떠올랐다.

토요일이라 기차로 이동한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동생이 기차표를 끊었을 것이다

동생이 내 카드로 결제를 했을 리는 없지만

평생을 은행에 근무한 동생이니 궁금증을 풀 실마리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무슨 말이야, 그거 이상하잖아, 비밀번호도 입력했다며? 해킹당한 거 같은데? 분명히 카드 쓴 적이 없는데 결재되었다면 또 다른 곳에서 결재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아직은 그거 한 건뿐인데, "

"'다행이네 얼른 카드 정지 신청부터 해, 믿을 수 있는 전번으로 확인하는 척하는 게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라잖아, 누나 정보가 해킹 당한 거 같아, 혹시 누나에게 전화한 사람까지 정보가 털릴 수 있으니 얼른 경찰서가 서 신고해, 연락할 사람 있으면 누나 전화기 쓰지 말고 다른 사람 전화기 빌려서 쓰고"

"내 통장엔 잔고도 별로 없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전화기 해킹당하면 여러 사람 신상정보가 털린다니까"

겁이 덜 컬 났다,

나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경찰서로 KT 대리점국으로 뛰어다녔다

퇴근시간 이후의 일이라 모두가 원할치 않았지만 우여곡절 파출소에서 해킹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해킹 위험은 없었다.

긴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 아홉시 코레일에 전화를 했더니 철도청에서 결재 된 것이 아니라 철도회사와 연결된 영업점에서 결재 된 것이라 한다.


그제야 퇴근길에 지하철 근처에서 노트북 넣을 큰 가방을 산 일이 생각났다

딱 그 가격이었다.

어젯밤에 그 난리를 치는 동안에 한 번도 생각나지 않은 가방이다.

이제라도 생각났으니 치매는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나?

안심이 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단순 건망증이라기엔 도가 좀 지나친 것도 같다.

여기저기 전화도 여러 번 해야 했고 가까운 사람들을 걱정시켰으며 파출소로 KT 대리점으로 뛰어다녔다

저녁 6시 이후의 시간은 악몽 같았다.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생각났잖아, 치매는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야'

' 초기일 수는 있지 않을까? 지금은 이렇게 깜빡깜빡하지만 까맣게 잊는 순간이 올지도 몰라'

'이건 착오였어 코레일만 아니었어도 금방 기억해 낼 수 있었을 거야, 코레일에 집착하느라 몰랐던 거지, 사실 철도청에서 결재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만 카드 쓴 일도 생각나지 않았잖아, 카드 결제만 생각났어도 그런 의심은 안 했을 거야"

내 안에서 건망증과 치매가 싸우고 있다.

치매를 경도 인지 장애라 안심하고 싶은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과정을 우리 모두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빠르거나 늦거나의 차이이거나 심하거나 알아채지 못할 정도이거나의 차이일 뿐일지도 모른다.

미리 걱정할 일은 아니라지만 조심하거나 노력할 필요는 있다.

사는 동안은 나를 기억해야 한다.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데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