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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sun Cho Aug 23. 2019

[변호사언니들]왜 나는 잘 나가는 회사를 그만두었는가

부띠크 로펌 8년 차, 미련 없이 그만두기 

고용변호사 생활 8년 만에 퇴사한지도 9개월 차가 되어 간다. 

5년 3개월간 한 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퇴사를 할 때까지를 기록으로 남겨본다.

하루에도 3-4번은 드나들었던 법정

#1. 육체의 on과 off만 무한 반복하던 시간들


내가 다니던 직장은 특정 분야의 송무와 자문, 연구에 특화된 이른바 '부띠크 펌'으로

그 분야에서는 선도적인 회사라고 일컬어지는 곳이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때부터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였지만 처음 지원했을 때는 다른 내정자가 있다는 이유로 고배를 마신 후 차선책으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2년 반 만에 재도전했고 운 좋게 합류 성공.


그렇게 들어가기 원했던 직장에 뒤늦게 합류한 이후

첫 직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정부기관의 연구 프로젝트에 입찰해서 프로젝트를 따내고,

보고서를 제출해서 납기까지 마치는 재미있는 일에도 참여했다.


5년여간 소속 변호사(보통 업계에서는 associate의 준말로 '어쏘 변호사'라고 말한다)로 일하면서 

통상 10개 정도의 자문기관의 정기 자문을 하고 30개 정도의 송무를 진행했고

한 해에 1-2개의 굵직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5년여간 점점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있는 것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매주 2번 이상은 지방에 재판을 다니고, 밤에 돌아와 서면을 작성하고 

자문처에서 의견서를 독촉하면 지방 재판을 가는 기차 안에서도 의견서를 작성했다.

그 와중에 마지막 해에는 송무, 자문뿐 아니라 한 번에 2개의 연구 프로젝트가 돌아갔고 그 2개의 프로젝트에 모두 내가 연구원으로 투입되었다.


프로젝트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가서도 송무 불변 기일을 걱정하고

한국 시간에 맞춰서 의뢰인과 연락하고 소송의 진행을 걱정하고 있었다.


2평 남짓한 공간에 꽉 찬 서류와 책들


#2. 인간 좀비로 살아가기


작년 이맘때를 기억한다.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 휘적휘적 버스를 타고 회사에 당도하면

하루에 5-6잔의 커피를 밀어 넣으며 책상 앞에서 앉은 상태로 연료 개념의 식량을 밀어 넣으며 일을 하고

새벽 1시가 넘어서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너무 각성된 상태라 잠이 오지 않으니 위스키를 마시고 기절하듯 자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다음 해 계약 갱신할 때도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내가 너무 들어가고 싶어서 몇 번이나 러브콜을 했던 회사였지만

5년을 쉼 없이 달리고 나니

누군가 툭 건드리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연구보고서 납기일이 다가올수록 죽고 싶다, 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회사였고

5년 반 동안 한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기에 너무 좋은 회사였지만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걸려오는 전화 한 통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이 생활을 계속하다가는

정말 크게 아프겠다 싶었다.


자는 시간 외에는 책상 앞에서 쓰고, 쓰고 또 썼다

#3. 퇴사 통보를 하다


드디어 퇴사 결심을 하고, 대표에게 퇴사 의사를 통보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회사여서

연말에 계약갱신 의사를 물은 후 갱신 의사를 표시하면 

연초부터 새로운 근로계약이 시작되는 형태였다.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연말에 근로계약 갱신거절 의사를 밝히고 나면

회사 입장에서는 근로자를 붙잡을 명분이 별로 없게 된다.


구성원 입장에서는 퇴사를 할 거라면 11월에 퇴사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새로운 구성원을 찾아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도

1달여간 넉넉하게 준비를 할 수 있어 부담이 적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계약기간 도중에 퇴사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회사에게 미안함이 적다.


이와 같은 점과 연구 프로젝트가 12월 정도에는 둘 다 종료된다는 점을 고려해서

11월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12월 말까지 근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여자가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구려' 보이는 경우는 감정이 북받치는 경우라고 생각해서

평소에는 속마음을 거의 말하지 않고 회사를 다녀왔던 나였지만

퇴사 의사를 표시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4. 퇴사 준비를 하다


대표의 방을 나서면서부터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수십 건의 송무, 자문을 인계하는 인수인 계표를 만들고

허덕이던 연구보고서들을 마무리했다.


그 사이 변호사회에서는 내 이름 3글자가 박힌 2019년의 변호사 수첩을 발송해 주었다.

예전 같으면 받자마자 변론기일, 납기일 등을 빼곡하게 적었겠지만

2019년 1월 1일부터는 적을 기일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5. 퇴사 후의 삶


그렇게 1달간의 인계를 마치고

첫 번째 직장부터 8년여간의 소속 변호사의 생활을 정리하고, 

3달간 휴식기를 가진 후 개인사업자로서의 변호사의 삶을 시작했다.


8년 차 변호사의 개업.

지금은 개업한 지 3개월이 되었는데

개업 이야기는 앞으로 써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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