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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팅 Apr 06. 2023

사진을 찍는 이유

남는 건 사진뿐?

오늘날 핸드폰은 더 이상 폰이라고 불릴 수 없을 정도의 화질을 제공한다. 

웬만한 카메라보다 좋은 핸드폰 카메라 성능과 256GB의 높은 용량으로 핸드폰의 정의 자체를

전화가 가능한 카메라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당신은 이 핸드폰을 이용해서 언제 사진을 찍는가

당신은 왜 사진을 찍는가 

그리고 그 사진을 언제 다시 꺼내보는가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창고 속에 박혀있었던 사진첩 앨범들이 뭉텅이로 나왔다.

나의 유년시절과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들이 가득했다.

너무 어린시절 사진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우스꽝스러운 표정, 짜증 내는 표정, 웃는 표정 등이 주됐고

'아 내가 이랬었구나' 하는 놀라움과 함께 감상했다.


순간 내가 기억나지 않는 아주 옛날이 아닌

저간의 사진들이 보고 싶어 

클라우드에 백업해 놓은 사진들을 정주행 하다가 5~6년 전 사진들이 나왔다.

유럽에서 즐거웠던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사진은 이렇게 많이 찍었는데 왜 꺼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클라우드 속 어떤 사진들은 슉슉 넘기고 어떤 사진들은 멈추고 유심히 감상했다.


그리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넘겨버린 사진들과 유심히 감상에 젖은 사진들의 차이점을 깨달았다.

내가 넘겨버린 사진들은 유명하다는 관광지만 열심히 찍어놓은 사진들이었다.

직접 촬영했지만 바로 넘겨버린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곧 죽어도 찍어야 한다며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앞라인에서 찍은 모나리자 사진은 

지금의 나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나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일까


반면에 내가 추억에 젖어 유심히 감상한 사진들은 나, 가족,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내 여행 사진들 속 

-관광객 누구나 의무적으로 찍는 장소나 작품 사진

-내 모습이지만 한컷을 건지기 위해 찍었던 인위적인 몇십 장의 사진들은 

지금의 나에게 큰 감동이 오지 않아 슉슉 넘겨 버렸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저 때 온전히 순간을 100% 즐겼나?

사진을 위한 사진을 찍지 않았나?

나는 왜 그토록 내가 잘 나올 때까지 사진을 찍었지? 대체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


내가 잘 나온 사진을 건지기 위해 친구를 구박하며 

그 순간을 담기 위한 사진이 아닌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주객전도가 된 사진들은 서로가 고생해서 찍었지만 슉슉 넘겨버리는 사진들이 된 것이다.


그때의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때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은 

자연스럽게 찍힌 노력해서 찍은 사진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찍은 사진이자 

그 온전한 순간에 빠져 즐기다가 어쩌다가 촬영된 사진이었다.


창고에서 발견한 유년시절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 사진들을 하나하나를 유심히 봤던 이유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게 찍힌 내 모습이 더 즐겁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은 사진을 많이 찍어라라는 말이 아니라 그 순간은 남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다만 사진을 찍기 전에

오각(五覺)을 있는 힘껏 열어 순간을 200%로 즐겨보자.


사진은 다시 찾아보면 되지만 그 장소의 감정과 순간은 다시 경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경험하기 어려운 여행지일수록 더 사진만 남기지 말자.

그 순간은 남지 않는다. 온몸으로 순간을 즐기자 

 

바르셀로나의 파란 하늘을 온몸으로 느끼고

파리의 겨울냄새를 기억하며

영국의 가랑비가 내리던 초저녁의 거리를 떠올릴 수 있도록


나의 순간을 담는 도구로 사진을 이용하자

사진을 위해 나를 이용하지 말자.

친구와 소중한 순간을 추억하며_바르셀로나에서


안녕히 계세요. 눈으로 찍는 사진가 우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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