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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Jun 21. 2022

김종영,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파의 언어.

중요한 이야기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버렸다. 한국 지식사회의 문제점을 여러 각도로 둘러보는  필요한 일이지만, 표현은 농익지 않았고 책임질  없는 주장도 더러 있었다. 사회학자란 정제된 언어로 세상을 분석하는 사람일텐데, 한국에서 한국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자의 언어가 외려 한국 독자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지배받는 지배자> 이후의 작품들을 읽지 않아 예단은 금물이지만, 전형적인 미국 유학파의 언어였다.


1장 '지배받는 지배자' 문장 하나를 살펴보자. "이 책은 한국 지식인의 트랜스내셔널 탄생을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 트랜스내셔널 위치 경쟁, 트랜스내셔널 직업 기회들 사이의 역학 관계 속에서 이해한다." 글쎄, 이해하기 쉬운 문장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왜 미국까지 가서 공부를 하는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했다는 말일텐데, 지적인 자극을 받기에는 지나치게 비문이다.


33쪽의 이런 문장은 어떤가. "학문이라는 로고스적 활동이 학문 공동체의 집단적 에토스 및 집단적 파토스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이 책의 여러 섹션에서 설명할 것이다." 쓰지 말아야 할 문장이다. 연구를 제대로 하고 싶어도 조직 내부의 규범과 구성원들과의 관계 때문에 쉽지가 않다는 뜻일텐데, 로고스니 에토스니 불필요한 단어가 너무 많다. 영어를 포함해,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특히 조심해야한다.  


에필로그의 첫 문장은 이렇다. "학문은 더럽다. 정치가 그러하듯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는 알겠으나, 일부러 냉소적인 표현을 사용한 이유도 짐작할 수 있겠으나 이런 문장은 곤란하다. 한국 지식사회가 민주적이지 못하고, 그래서 그 방편의 하나로 미국 유학을 택한다는 게 저자의 주요 문제 의식일테지만, 가만히 있는 정치를 학문 세계에 빗대는 건 연구자로서 지나치게 간편한 방식이다. 문제는 대학사회, 지식사회 내부의 정치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을 바탕으로 "미국 유학파 지식인들을 '지배받는 지배자'로 명명"했다.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결론의 다음 문장도 좋다. "한국 지식인 집단은 민주화와 근대화를 거세게 요구해왔지만 정작 본인들은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가장 모순된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 주장이 단단해지려면, 자신의 문제 의식을 한국의 독자와 공유하려면 군데군데 심어놓은 느끼한 표현들을 확 걷어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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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어볼 책

1. 윤치호,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산처럼, 2013

2. 피에르 부르디외 등, <사회학자와 역사학자>, 킹콩북, 2019

3.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열린책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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