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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Jun 25. 2022

강원국, <나는 말하듯이 쓴다>.

관종과 눈치꾼. 

강원국 작가의 2020년 작품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읽었다. 그는 2014년에 <대통령의 글쓰기>와 <회장님의 글쓰기>를 썼고, 2018년에는 <강원국의 글쓰기>를 썼다. <강원국의 글쓰기> 서문에 따르면, 그는 "첫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내고 1,000번 가까이 강연을 했다"고 한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머리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이 책은 내가 말하기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썼다." 같은 책 267쪽을 보면, 그가 "지난 6년 동안 강의를 2,000번 이상" 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는 이렇게 못한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앞 날개에 이런 표현이 있다. "이제는 내 말을 하고 내 글을 쓴다.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열심히 말하고 쓴다. '관종'으로, '강원국'으로 나답게 산다." 그는 <대통령의 글쓰기>를 쓰기 전에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는 말하기와 글쓰기의 비법을 알려주는 책인 동시에, 한 투명인간이 존재감을 찾아가는 편력의 기록이다." 나는 그가 스스로를 '관종'으로 묘사하는 게 참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다.


그가 '관종'이라는 건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379쪽 '나가는 글' 문장 하나가 압권이다. "다시 읽어보면 볼수록, 아무리 봐도 잘 썼다. 책을 다 쓰고 나면 비로소 전체 윤곽이 보이고 후회가 밀려오기 마련인데, 이 책은 아무런 미련이 없다. 도리어 신물이 난다. 다시 써도 이보다 잘 쓸 자신이 없다." 웃기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표현이다. 347쪽에 서술된 그의 '관종론'을 다시 읽어보면 더욱 그렇다. "관종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무대의 중심에 선다. 물론 관종 너머의 세상도 있다. 관심에서 초연한 수준 말이다." 초연함은 득도의 단계이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 많이 배운 문장은 278쪽 3번째 문단에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열정과 사색에서 나온다. 듣고 싶은 말은 배려와 공감에서 찾아진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의 균형을 잘 맞춘다. 하고 싶은 말만 늘어 놓으면 꼰대가 될 수 있고, 듣고 싶은 말만 잔뜩 하면 알맹이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을 돌이켜보니, 이 균형을 그리 잘 맞추지 못했던 것 같다. 뭘 안다고 생각했을 때는 꼰대처럼 오만방자한 말을 했고, 뭔가 얻어낼 게 있으면 쭉정이처럼 쓸모없는 말을 내뱉곤 했다. 


<강원국의 글쓰기> 99쪽 마지막 문장을 기억한다.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내 글을 썼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썼다." 이 책 <나는 말하듯이 쓴다> 349쪽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관종이다. 관종과 눈치꾼은 한 끗 차이다. 내가 중심이고 주체이면 관종이고, 누군가의 대상이고 객체이면 눈치꾼이다. 더는 투명인간처럼 살고 싶지 않다." 그는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훗날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는 '글쓰기학교 교장'이 되고 싶다고 썼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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