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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Jul 13. 2022

문재인, <문재인의 운명>.

원칙과 책무.

<문재인의 운명>을 읽었다. 2011년 6월에 초판을 읽은 이후 11년 만이다. 그 사이 그에겐 여러 변화가 있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당선된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세월호가 가라앉았고 교과서가 국정화됐다. 야당 당대표로 당선돼 정당 개혁을 홀로 이끌었고, 당 내부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당을 쪼개는 과정을 지켜봤다. 18대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과정을 목도했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여당 대표와 소속 정당 의원들이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코로나는 한 마음으로 퍼져나갔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내내 추잡하고 난잡했으며, 17대 대통령의 생각을 닮은 사람이 최종 당선됐다.


다시 읽은 <문재인의 운명>은 그때의 느낌과 많이 달랐다. 같은 문장에 밑줄을 친 곳도 많았지만, 그때는 보이지 않던 문장들이 이번에는 눈에 들어왔다. 대통령의 87년 6월 항쟁에 대한 자부심,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답답함, 진보 진영의 한계에 대한 아쉬움은 그때처럼 공감했다. 반면, 시민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알고 보니 결국 혼자였다는 것, 도덕적인 긴장을 갖고 원칙대로 해나가면 결국엔 모두가 등을 돌린다는 것, 비슷한 언어로 정권을 획득했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지도부는 태도 자체가 다르다는 걸 11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회의 공익을 위해 대통령을 한다는 건 외로운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시절을 회고하는 196쪽의 문장도 새롭게 다가왔다. "세상인심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정말 고마운 분들은 부담 줄까봐 또는 내가 바쁠 것을 배려해 연락을 삼갔다. 반면  어떻게 도왔는지

알 수 없는 분들이 오히려 공치사를 하며 만나자고 했다. 감사인사를 적절하게, 그러면서 분별 있게 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피곤한 일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평산마을을 무슨 투어 돌 듯 가는 일군의 무리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기어코 양산까지 가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은 다음 부리나케 나 다녀왔다고 만방에 떠든다. 사면초가 상황에서 고군분투했던 옛 장수들과 두 대통령의 심정을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고독했을 것 같다.


이번 독서에서 가장 아프게 다가온 문장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대통령의 회상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팠다. 돌아가시는 순간의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아버지가 삶에 너무 지쳐서 생명이 시나브로 꺼져간 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게 기대를 걸었던 아버지에게 잘 되는 모습이나 희망을 보여 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다만 고통스러운 건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무리해서 대학까지 보내 주신 건데, 내가 그 기대를 저버렸다는 괴로움이었다. 어머니가 호송차 뒤를 따라 달려오던 장면을 뇌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문재인의 운명>을 다 읽은 후, 두 대통령의 생각을 곱씹어봤다. 노무현 대통령은 "계산하지 않는 우직한 정치가, 길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길"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땐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번번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 책 서문에는 또 이런 문장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있다. 이제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무를 순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냉정하게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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