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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Jul 17. 2022

이상록, <로마시티> 프롤로그.

스프레차투라 sprezzatura. 

이상록 작가의 2021년 작품 <로마시티> 프롤로그를 우선 읽었다. 첫 문장은 웅숭깊었고, 받아주는 문장은 유려했다. "진정한 멋은 스며든 상태에서만 나온다." 라는 첫 문장은, 오래된 도시 로마를 있는 그대로 감싸 안았다. "진짜 멋은 뽐내지 않아도 무심하게 드러난다." 라는 두 번째 문단 첫 문장은, 시간이 쌓이고 쌓인 로마 시티에 깊이를 더했다. 로마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덕분에 로마에 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록 작가는 이탈리아 학자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1528년 저서 <궁정론 Il Libro del Cortegiano>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궁정인 宮廷人은 뭐든지 태연하게 행동하도록 연습함으로써 예술적 기교를 감추고 말과 행동이 꾸며냈거나 공들여 만든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힘들게 어떤 일을 행하고 거기에 계속 신경을 쓰면 우아함과 기품이 없어 보이며, 사람들은 그가 하는 일을 무시하게 된다." 


이렇게 "태연하게 행동"하는 연습이 켜켜이 쌓이면 "근사하고 세련된 사람"이 되며, 이런 사람은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라는 말쑥하고 품위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스프레차투라는 그냥 무심히 행하라는 말이" 아니며, 우리 "몸에 완벽히 스며들도록 오랜 시간과 고된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멋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라고 한다. 이렇게 시간과 압력이 더해지고 스며들여야 비로소 진정한 멋이 나온다고 한다.


나는 카스틸리오네의 두 번째 문장을 읽고 <길가메쉬 서사시>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필멸하는 인간 길가메쉬가 "유일무이한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에게 처절하게 듣는 말이다. "너는 쉼없이 고생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고생 끝에 네 자신이 완전히 지쳐버리면, 너는 네 몸을 슬픔으로 가득 채우고 너의 긴 인생 항로를 조급히 끝내는 길로 접어든다! (…) 비정한 죽음은 인간을 꺾어버린다. (…) 바로 그것이다."


책 앞날개에 이상록 작가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림 그리기, 여행, 역사 이야기 읽기를 좋아한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자퇴한 뒤 네이버, 넥슨 등 IT 업계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아트디렉터, 게임 컨셉 아티스트, UI 디자이너 등으로 일하고 있다. 소소한 로마여행 그림책을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했던 일이 15년이 지나는 동안 두꺼운 인문교양서가 되고 말았다." 15년, '스프레차투라'가 다듬어 지기에 부족한 시간은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강아지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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