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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Sep 17. 2022

딸에게 읽어주는 <사기 열전> 18.

평원군 우경 열전 平原君 虞卿 列傳. 

아빠는 <평원군 우경 열전>에서 역사의 주연들보다는 조연 또는 단역이 했던 말들에 비중을 두며 너와 대화를 하고 싶다. 이름없는 이들이 했던 말을 짚어본 건 지난 번 <저리자 감무 열전>에서 '소대'의 표현을 살펴본 이후로 두 번째인데, 아빠는 그때 소대의 다음 표현을 참 좋아했었다. "세상 사람들은 '존귀하게 된 까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가 존귀하다' 라고 말합니다." 이번 <평원군 우경 열전>에서는 한 절름발이에 얽힌 일화와 모수라는 한 식객의 웅변에 주목할 것인데, <사기 열전>은 이런 숨겨진 묘미가 구석구석에 박혀 있다.

    

먼저 한 절름발이에 얽힌 이야기를 읽어볼까? "평원군平原君의 집 누각에서는 민가가 내려다보였다. 민가에 절름발이가 살고 있었는데 절뚝거리며 물을 길으러 다녔다. 평원군의 애첩이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다음 날 절름발이가 평원군의 집 앞에 와서 말했다. '저는 당신이 선비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선비들이 1000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는 것은 당신이 선비를 소중히 여기고 애첩을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행히 다리를 절뚝거리고 등이 굽는 병이 있는데 당신 애첩이 저를 비웃었습니다.'"


절름발이는 평원군에게 자신을 비웃은 자의 목을 베어 달라고 요청했고, 평원군은 알겠다고 답을 했지만 그가 돌아가자 이렇게 말했다. "이 작자 좀 보게. 한 번 웃었다는 이유로 내 애첩을 죽이라고 하니 너무하지 않은가?" 이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 것 같니? 그래, 평원군은 물론 애첩을 죽이지 않았고 그의 식객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의 문하에 있던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절름발이를 비웃은 자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비들은 당신이 여색을 좋아하고 선비를 하찮게 여기는 인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모수라는 한 식객의 웅변을 읽어볼까? 모수는 평원군의 식객 중 한 사람이었는데, 다른 빈객들에 비해 그 존재감이 극히 미미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평원군과 다른 식객들은 그를 무시했고 일부는 조롱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이었다. 진나라의 세력이 강해져 합종책이 필요한 시기, 조나라 왕은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 일을 성사시키고자 했는데 평원군을 따라 나선 식객들은 어찌 된 일인지 죄다 발을 빼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때 모수가 나섰다. 먼저 말로써 평상군을 설득했고, 다음에는 초나라 왕에게 합종의 타당함을 설명했다.


"모수는 초나라 왕의 좌우 신하들에게 말했다.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시오.' 모수는 초나라 왕에게 말했다. '왕께서 먼저 피를 마셔 합종을 약속하셔야 합니다. 다음 차례는 제 주인이고, 그다음 차례는 접니다.'" 이렇게 두 나라 간 합종은 어전 위에서 성사되었고, 모수는 평원군을 따라 나선 열아홉 명의 식객을 내려다보며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당 아래에서 이 피를 마시시오. 그대들은 범속하고 무능하며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열아홉의 식객들은 얼굴도 들지 못한 채 짐승의 피를 돌려가며 마셔야 했다. 


어땠니? 절름발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니? 사랑에 정신이 팔린 넋 빠진 평원군? 아빠는 그것과 함께 이런 생각도 했다. 평원군의 애첩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못나 보이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멸시하는 못된 습관이 있다. 열아홉 명의 식객 이야기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니? 아빠는 '식객食客은 역시 식객'이라는 생각을 했다. 식객을 국어사전에서 한번 찾아볼까? ① 예전에, 세력있는 대갓집에 얹혀 있으면서 문객 노릇을 하던 사람. ② 하는 일 없이 남의 집에 얹혀서 밥만 얻어먹고 지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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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는 평소보다 조금 길었지? 다음 시간에는 <위 공자 열전>을 함께 읽어보자.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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