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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Sep 23. 2022

딸에게 읽어주는 <사기 열전> 21.

범저 채택 열전 范雎 蔡澤 列傳. 

며칠 쉬었다가 책을 읽으려고 하니 머리가 잘 풀리지 않는다. 단지 이 배가 산으로만 가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읽어보자. 오늘 다룰 <범저 채택 열전>에는 그간 우리가 읽고 들었던 이름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만큼 범저와 채택 두 사람이 전국시대에서 종합적인 인물이기도 했고 그래서 사마천이 더욱 애정을 가지고 평가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아빠는 짐작해본다. <범저 채택 열전>의 주인공은 위나라 범저, 연나라 채택 그리고 진나라 소왕이며, 범저와 채택은 모두 진나라에서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범저의 이름은 익숙하지 않니? 그래, <양후 열전>에 잠깐 나왔었다. 양후는 진나라 소왕의 외삼촌이자 선 태후의 남동생이었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도 많아 권세도 높고 재산도 많았다. 배경이 이러니 양후는 자연스레 물러서는 마음을 배우지 못했는데, 바로 그 즈음 범저가 진나라에 나타나 소왕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줬다. 범저의 말을 오래 경청한 소왕은 곧바로 양후를 파면했고, 쫓겨난 양후는 자신의 봉읍에서 외로이 살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범저는 어떻게 되었을까? 앞서 말한대로 그는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채택의 이름은 그동안 나오지 않았었다. 범저가 소왕을 보필해 재상의 자리에까지 이르고, 진나라 역시 나날이 영토를 넓히고 구가했지만 문제는 바로 그 범저에게서 싹 트고 있었다. 채택이 범저에게 했던 말을 함께 읽어볼까? "옛말에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이 차면 이지러진다'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왕성해지면 쇠약해지는 것이 천지의 영원한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은 성인의 영원한 도리입니다." 채택이 보기에 범저는 물러설 줄 몰랐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채택의 일갈을 조금 더 들어볼까? "제가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길흉을 알 수 있다' 라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범저는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어린 놈이 버릇없다며 채택을 호되게 꾸짖었을까? 재상의 권력을 채택에게 비추며 그의 목을 댕강 잘랐을까? 아니다, 오자서처럼 기다릴 줄 알았던 범저는 채택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잘못한 바를 뉘우쳤다. 양후와 달리 범저는 스스로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마지막으로 진나라 소왕이 범저에게 했던 말을 살펴보자. 양후의 권력이 온 나라를 부끄럽게 하고 있을 때였고, 범저는 이제 막 소왕의 눈에 겨우 들어오던 때였다. "과인이 마땅히 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아야 했지만 때마침 일이 화급"하였소. "지금은 일도 마무리됐으니 과인은 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소. 과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소, 이제 삼가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 예우하며 가르침을 받들겠소." 소왕은 무려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근본도 없고 행색도 남루했던 범저에게 최대의 예를 갖춰 가르침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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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저 채택 열전>에는 우리가 앞서 읽었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제나라 관중이 등장하고 제나라 환공이 나온다. 한비가 나오고 오자서가 등장한다. 공자가 등장하고 상앙이 나온다. 소진이 나오고 백기가 나온다. 전국시대 사공자 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이 모두 나온다. <범저 채택 열전>을 읽은 후 앞서 스쳐갔던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이번 독서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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