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불위 열전 呂不韋 列傳.
여불위呂不韋는 전국시대 진나라 사람이다. <양후 열전>과 <범저 채택 열전>에 나왔던 진나라 소왕과 동시대 사람으로, 소왕의 아들 안국군 효문왕과 효문왕의 아들 장양왕 자초 곁에서 권세를 누린 자이다. 여불위의 출생 연도는 제대로 알려진 게 없고 사망한 해는 기원전 235년이라고 전해지는데, 전국시대가 기원전 403년에서 기원전 221년까지이니, 우리는 그가 전국시대 말기에 이름을 날린 사람 정도로 인식할 수 있겠다. 같은 시대에 여불위 말고도 세력을 구축한 이들이 많았는데, 사마천은 대체 여불위의 어떤 점에 주목했을까?
<여불위 열전> 첫 문장을 읽어보자. "여불위는 양책의 큰 상인으로 여러 곳을 오가면서 물건을 싸게 사들여 비싸게 되팔아 집안에 천금의 재산을 모았다." 사마천이 주목한 건 바로 여불위의 장사 수완이었는데,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제부터 천천히 살펴보자. 여불위가 장사를 하고 있던 조나라 한단 지역에 '자초'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나라 소왕의 아들인 안국군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당시 자초는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는 상태였다. 이 자초의 신분을 알게 된 여불위는, 바로 그의 '지위'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여불위는 우선 안국군이 총애하던 화양 부인을 찾아가 재물을 바치며, 아들이 없던 그가 자초를 양자로 들일 것을 부탁했다. 화양 부인은 안국군을 설득해 자초를 양자로 들였고, 소왕이 사망한 후 안국군은 진나라의 왕위를 잇게 된다. 자초는 자연스럽게 진나라의 태자가 되었고, 화양 부인을 등에 업은 투자자 여불위도 자연스레 권력을 누리게 된다. 안국군 효문왕은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못 가 노환으로 세상을 뜨게 되고, 여불위가 그토록 오랜시간 투자했던 자초가 마침내 진나라의 새로운 왕 '장양왕'이 된다. 투자는 일단 성공했다.
비극은 지금부터다. 여불위가 자초에게 투자를 시작할 무렵, 그에게는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고 춤을 잘 추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자초가 여불위의 투자 전략을 듣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그 무희를 보게 됐는데, 그 매력에 빠져버린 자초는 다짜고자 그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했다. 여불위는 당연히 화가 났지만, 큰 그림을 그리며 투자를 시작한 그는 자초에게 그 무희를 바친다. 무희의 배 속에는 여불위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자초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그와 혼인을 맺게 된다. 시간은 흘렀고 마침내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
사내의 이름은 '정政'이었다. 정의 어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자초가 장양왕이 되었을 때 정의 나이는 겨우 아홉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장양왕 또한 단명을 하게 되었고, 사내의 어머니는 상국의 지위에 있던 여불위와 정을 통하게 된다. 의심이 많고 신중한 성격이었던 정은 마침내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장성한 정은 왕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어머니를 궁궐 밖으로 내쫓고 여불위에게는 짧은 편지 한 장을 보내 그 스스로 자결을 택하게 한다. 이렇게 여불위의 투자는 비극으로 종료되었고, '정'은 더 자라나 중국을 평정한 '진시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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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투자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여불위의 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말이 별로 없다. 다음 시간에는 <사기 열전>의 26번째 이야기인 <자객 열전>을 함께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