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 진여 열전 張耳 陳餘 列傳.
오늘 우리가 만나볼 시대는 시황제 죽음 이후의 진秦나라이다. 지난 네 차례 이야기 ―<여불위 열전>, <자객 열전>, <이사 열전>, <몽염 열전>― 에서 우리는 시황제가 어떻게 정권을 잡았고, 어떻게 정권을 잃었으며, 또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 살펴보았다. 한 인간의 흥망과 한 나라의 성쇠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니? 아빠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그 조직은 반드시 소멸하거나 존재하더라도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라고. 그 잘 나가던 진나라도 기원전 206년에 결국 멸망했다.
그럼 <장이 진여 열전>을 읽어볼까? 오늘은 그간 아빠가 이야기 해온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진나라를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직접 살펴보는 것으로 큰 줄기를 잡았다. 먼저 이번 이야기의 두 주인공인 장이張耳와 진여陳餘가,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진섭陳涉에게 했던 말을 한번 읽어보자. "저 진나라는 무도하여 남의 나라를 깨뜨리고 남의 사직을 없애고 남의 후세를 끊었으며, 백성의 힘을 쇠약하게 하고 백성의 재산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두 사람은 진을 무도하다고 표현했다.
다음으로 무신武臣이라는 진섭의 장군이, 진섭의 봉기에 동참하자는 뜻으로 여러 호걸들에게 했던 말을 들어보자. "진나라가 정치를 어지럽히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여 세상에 해를 끼친 지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북쪽으로는 장성을 쌓는 부역이 있었고, 남쪽으로는 오령을 지키는 병역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안팎으로 소란스럽고 백성은 지치고 쇠약해졌는데 집집마다 식구 수대로 세금을 거둬들여 군사 비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재산은 바닥나고 힘이 다하여 백성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무신은 부역과 병역, 형벌과 세금을 언급했다.
장이와 진여 그리고 무신이 사용한 단어를 종합하면 이렇다. '진나라는 무도하다, 정치는 어지럽고 형벌은 촘촘하며, 백성들에게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백성들을 쓸데없이 징발한다.' 이런 이유로 형가는 자객이 되어 칼을 들었고, 이런 이유로 진섭은 징발을 거부하고 봉기를 했다. 여불위, 이사, 몽염은 어떻게 했을까? 우리가 이미 읽은대로 이 세 사람은 반대의 입장에 있었다. 황제의 곁에서 권세를 누렸고, 환관 조고와 함께 시황제가 듣고 싶은 말만 했으며,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백성들을 강제로 모았다. 물론 그들은 그들의 논리가 있었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전국시대였다. 전쟁이 일상이었던 시대였다. 상대를 속이고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속고 죽는 시대였다. 노중련과 추양, 굴원과 가생처럼 현실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있었지만, 권력을 조금이라도 맛 보거나 권력에 조금이라도 가담한 자는 모두 무도해야만 되는 시대였다. 현실에서 벗어나 스스로 먹고 살 만한 궁리를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소동에 휘말렸던 시대였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빠가 전국시대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단지 시대가 그러했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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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022년의 대한민국은 어떤 시대일까? 전쟁이 없으니 전국시대는 아닐까? 모든 게 사리에 맞고 이치에 딱딱 맞는 시대일까? 우리들은 도리에 맞는 말과 행동을 일상에서 하고 있는 걸까? 모를 일이다. 다음 시간에는 <사기 열전>의 30번째 이야기인 <위표 팽월 열전>을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