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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Oct 19. 2022

딸에게 읽어주는 <사기 열전> 33.

경포 열전 黥布 列傳.

오늘 우리가 읽을 이야기는 <사기 열전>의 31번째 편인 <경포 열전>이다. 시대는 바로 앞의 이야기인 <위표 팽월 열전>처럼 '진말한초秦末漢初'이고, 시황제가 앉았던 그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여러 호걸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소멸하는 시기이다. 이 시대를 다룬 소설로는 <초한지>가 널리 알려져 있고, 춘추전국시대 전체를 이야기한 책으로는 <동주 열국지>가 있다는 것도 알아둘까? 복습하자면, 춘추전국시대는 서주西周가 멸망하고 동주東周가 일어선 기원전 770년 이후부터 시황제가 중국을 평정하는 기원전 221년까지를 말한다.  


<경포 열전>의 주인공은 경포黥布이다. 첫 문단을 한번 읽어볼까? "경포는 성은 영씨이고 진나라 때는 서민이었다. 젊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의 관상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형벌을 받고 나서야 왕이 되겠군.' (영포가 장년이 되고 어떤 일로 다른 사람의 죄에) 연루되어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경형黥刑을 받게 되자, 경포는 너무 기뻐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내 관상을 보고 형벌을 받고 나서야 왕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말한 거겠지.'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모두 경포를 놀리며 비웃었다." 경포는 왕이 되고 싶었나보다.


계속 읽어보자. "경포는 판결을 받고 여산으로 보내졌다. 여산에는 형벌을 받은 죄수가 수십만 명 있었는데, 경포는 그 죄수들의 우두머리나 호걸들과 사귀었다. 그런 뒤에 그 사람들을 이끌고 강수 부근으로 달아나서 떼를 지어 도둑질을 일삼았다." 경포는 이후 초나라 항우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전적을 쌓게 된다. 사마천의 문장은 이렇다. "초나라 군대는 늘 진나라 군대를 이겨 제후들 가운데 공이 으뜸이었다. 제후들의 군대가 모두 초나라에 귀속하게 된 것은 영포가 적은 병력으로 진나라의 대군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경포가 초나라 항우 밑에서 공을 쌓고 있을 때, 한고조 유방이 꾀를 내어 경포를 한나라로 귀순케 했다. 경포를 얻은 유방은 세력이 더 커졌고, 한나라의 영역도 더욱 넓어졌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유방은 휘하 군사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염려해 그들을 하나 둘 죽이기 시작했다. 회음후 한신의 목을 베었고, 팽월을 가마솥에 삶아 죽인 다음 소금에 절였다. "소금에 절인 살덩이를 그릇에 담아 제후들에게 두루 내려주었다." 회남 지역의 왕이었던 경포는 이 살덩이를 보고 몹시 두려워하여,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유방을 칠 계획을 짜게 된다. 


경포는 어떻게 되었을까? 유방에 의해 처참히 죽었다. 사마천은 <경포 열전>을 집필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가 내린 평가를 함께 읽어보자.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 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한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이 될 수는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치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경포는 싸움을 잘 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늘 선봉에 섰다. 초나라에서는 당연히 영웅이었다. 권력이 바뀌자 영웅은 역적이 되었고 '경포'라는 이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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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附記

 

1. 우리는 어떤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이름을 남길 수는 있기나 할까? 평범하게 조용히 살다가 이름 없이 조용히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빠는 아빠 인생을 살고, 너는 네 인생을 살아라. 우리 다만 죄는 짓지 말자.


2. 공훈과 원혼이 왔다갔다 하는 전국시대 군인의 삶에 대해서는 <사기 열전>의 13번째 이야기인 <백기 왕전 열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 아빠는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한국전쟁 당시 소년병들의 삶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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