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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Dec 30. 2021

김재명, <오늘의 세계분쟁>.

영구평화는 불가능하다.

국제 분쟁 전문가 김재명의 근간 《오늘의 세계 분쟁》은, 그의 2005년 저작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의 개정 증보판이다. 전작에 비해 달라진 건 크게 3가지로, "전체적으로 여러 통계 숫자들을 최근 것으로 바꾸었"고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이라는 다소 이론적인 내용의 장(章)을 제1장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챕터에서 쉽게 풀어 설명했으며, '역전 앞'처럼 문법에 어긋나는 표현인 '알라 신' 을 '알라'로 바꾸었다. 이전 책에 보태진 것 역시 크게 3가지인데, 제2부 <분쟁 지역을 찾아서> 파트에 "이란, 시리아, 레바논을 새로 덧붙였고 기존의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여러 분쟁 지역들도 그동안 추가로 다녀온 내용들을" 더했으며, 책 마지막 장에 <지구촌 평화 전망 : 21세기 세계 평화 기상도는 '흐림'>이라는 논의를 추가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이 책의 목적은 우리 인간들이 무슨 까닭에 전쟁을 벌이는가를 살펴보면서, 지구촌 평화를 뿌리내리는 데 걸림돌이 무엇인가를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전작 머리말에서는 "현실적으로 '영구 평화'가 불가능하다면, 나는 차라리 평화를 기원하기보다는 아득한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 못 가진 자들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쪽을 택하겠다. 이 책은 그들이 탐욕스런 강자들과 벌이는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나의 작은 지지의 표시이자 연대의 기록이다." 라고 했으니, 지구촌에 평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선 더 많은 이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가 제시한 대안이자 이 책을 쓴 최종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전작에 비해 6가지나 달라지고 추가된 이유도 더 많은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저자의 고민에서 나온 것일테다.


저자는 우선 제1장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에서 선행 연구를 검토해가며 전쟁을 정의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다. 전쟁이란 "정치적 이해관계와 아울러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을 폭력적으로 푸는 수단"으로, "연구자마다 전쟁에 대한 해석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전쟁이란 '1년 동안에 1천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적대적 행위'로 정의내려진다" 고 설명한다. 이어서 전쟁 연구자들이 내리고 있는 전쟁의 3가지 원인을 제시하는데, "전쟁 원인 자체를 인간의 심성 속에 자리 잡은 공격 성향과 투쟁 본능에서 찾는 심리학적 · 철학적 시각, 국가와 사회의 속성상 정치 · 경제 · 문화 · 종교 각 부문의 갈등과 이해관계의 대립에서 전쟁이 비롯된다는 시각, 국제 체제상의 문제점(무정부적인 속성과 세력 불균형 등)으로 전쟁이 일어난다는 시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어진 제2장에서는 전쟁 연구자들이 정리한 1990년 이후 전쟁의 여섯 가지 특징을 보여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쟁 양상이 바뀌었다. 전통적 의미의 전쟁인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나 식민지 본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는 민족 해방 전쟁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내전들이 대부분이다." "둘째, 예전에 비해 전쟁 숫자와 피해 규모가 커졌다. 이는 전쟁이 그만큼 자주 일어났고 적대 세력을 향한 증오로 말미암아 전쟁이 가혹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 미국과 소련의 양대 세력으로부터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아 대신 전쟁을 치렀던 이른바 대리전이 없어졌다." "넷째, 국가 주권보다는 인권이 앞선다는 개념이 보편화돼, 전에 비해 국제 개입이 늘어났다." "다섯째, 인종 청소, 조직적인 성폭력, 손목 절단 등 잔혹한 전쟁 범죄 행위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여섯째, 내전과 국제전의 구별이 어려워졌다."


제1부 <전쟁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서 검토한 선행 연구를 토대로, 저자는 제2부 <분쟁 지역을 찾아서>에서 '오늘의 세계 분쟁' 지역에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서술한다. 저자가 찾아간 분쟁 지역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4개 대륙으로, 아시아에서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레바논, 시리아, 카슈미르, 캄보디아, 동티모르 등 9개 국가, 유럽에서는 보스니아, 코소보 등 2개 지역, 아프리카에서는 시에라리온, 아메리카에서는 쿠바와 미국 등 2개 국가에서 각각의 전쟁의 원인과 영향을 연구하고 또 이러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들을 모색한다. 제2부에서 눈여겨 볼 점은, 마지막 장인 제15장에 <미국 : '아메리카' 란 이름의 요새에 갇힌 슈퍼 파워>를 배치했다는 건데, 이는 저자가 연구하고 찾아간 분쟁 지역 모두가 미국의 직 · 간접적인 개입 때문에 '오늘의 세계 분쟁' 지역이 되었다는 걸 주장하기 위함이다.


세계 14개 분쟁 지역을 찾아간 후, 저자는 마지막 제3부 <21세기의 전쟁>에서 오늘날의 전쟁 양상을 설명하고, 머리말에서 언급한 전쟁의 원인과 분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들을 재차 제안한다. 먼저 21세기의 전쟁 양상은 1990년 이후 전쟁의 여섯 가지 특징이 그대로 전개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미국(과 미국의 비호를 받는 국가와 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 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 중동을 비롯해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 등 2가지 새로운 현상을 꼽을 수 있다고 저자는 제시한다. 이어서 저자는 국제위기그룹(ICG)의 연구를 인용해 "2010년대에 전쟁이나 유혈 폭동 또는 대규모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 16곳을" 보여주는데, 이는 각각 아시아 4곳, 아프리카 7곳, 중남미 5곳이다.


저자의 2005년 저작《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에서 알 수 있듯, 김재명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인정한다. 현실 정치에서는 '영구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6년 뒤에 낸 이번 책에서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듯이, 국제법을 어기고 전쟁을 벌이려는 유혹은 강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갈등을 푸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갈등을 풀고 평화를 심으려는 노력은 참을성을 요구한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피해야 한다." 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46년 창설된 유네스코 헌장의 전문에는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라고 쓰여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21세기 세계의 기상도는 여전히 '흐림' 이다. 지구촌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평화의 비둘기가 날아들길 기원해본다." 힘 없게 들릴지라도, 현실 정치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는 이들의 연대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양서(良書)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론과 현실을 접목해 오늘날 전쟁의 원인과 양상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서 자연스레 2011년의 세계 정치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자폭 테러는 거의가 이슬람에서 일어난다는 대중들의 오해를 바로잡아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살 폭탄 테러가 빚어진 곳은 이슬람 세계가 아니라 스리랑카다.") 저자의 박사 논문 주제이기도 하고 전작에서 별도의 장으로 할애해 설명한 '정의의 전쟁론'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냈다. 세계 분쟁 지역을 뛰어다니며 느낀 점들을 한반도에서 일어난 과거사와 연계시켜 서술하면서 국외 상황이 대한민국과 관계없는 별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역시 위험한 분쟁 지역이므로 세계 다른 지역의 분쟁 상황을 연구하면서 그것을

거울삼아 "한반도 평화 통일의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저자는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8․15 해방 정국에서 극좌 극우를 비판하면서 민족 분단을 막으려 했던 중도파를 집중 취재 보도했다." "한반도 분단 극복에 대한 관심"이 "국제 분쟁 쪽으로 넓혀졌고" 그래서 <정의의 전쟁 이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을 썼다. 분쟁 지역을 취재하면서도 "중도보다는 극단으로 치닫는 과격 세력" 에 눈길을 두었다. 결국 신문 기자를 할 때부터 고민해오던 주제를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저자가 학문의 영역에 들어선 후 끊임없이 붙잡고 있던 물음을 중간 결산한 후 그 결과를 공중에 제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이 양서라는 걸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분단과 갈등의 원인을 쉼 없이 연구해왔고 직접 그 분쟁의 현장에 뛰어든 한 사람이, 그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지식을 친절하게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다.


황량하고 메마른 땅을 수년간 찾아다닌 저자의 마음속으로 촉촉한 비가 내리기를 바란다.


작성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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