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율의 독서 Dec 29. 2021

이규천,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아빠의 조건. 

이 책의 저자 이규천은 유명한 두 딸을 두고 있다. 큰딸 이소연은 2018년 12월 기준, 미국 신시내티 음대 종신교수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며, 작은 딸 이소은은 역시 2018년 12월 기준으로 변호사이자 국제상업회의소 뉴욕지부 부의장이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딸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딸을 자랑하는 아빠가 없고, 아빠를 자랑하는 딸이 나온다. 이소연과 이소은의 아빠 이규천은 딸들보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인데도 말이다. 


이규천의 선친은 말 수가 적은 분이었다. 자녀들 시험 성적이 나쁘면 장대비가 와도 비 맞는 벌을 내리는 아버지였다. 자식들이 잘못을 하면 굵기가 다른 여러 개의 회초리를 자식들이 직접 고르게 한 다음 종아리를 때리는 아버지였다. 이규천은 아버지를 원망했다. 자식이 태어나 아빠가 되면, 아버지 같은 아빠는 안 될 거라 다짐했다. 그래도 이규천은 아버지가 살아냈던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조건은 바꿀 수가 없었다.


이규천은 열심히 살았다. 가난했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권력 앞에 비굴하지 않았다. 집에 돈이 없어 꿈을 접고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부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교수로 재직 중이던 대학에서 그를 부정한 방법으로 회유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재단의 비리를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는 그의 나이 서른 여덟이었다. 새벽에 햄버거를 먹으며 공부를 했다. 어린 두 딸은 이런 아빠를 보면서 자랐다.


이규천은 커가는 두 딸을 보며 생각했다. ‘아이가 본성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양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며, 기다려주면 ‘때가 되어 아이들 스스로 옳고 그름을’ 알게 된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겪게 되는 고통은 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책 앞 날개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지금'을 충실히 살기 위한 'forget about it'을 삶의 모토로 살았다."


이규천은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두 딸을 키우며 서서히 아빠가 되었다." 세상 모든 아빠가 그렇듯, 아빠는 아빠 공부를 못한 채 아빠가 되고, 이규천 역시 어쩌다보니 아빠가 되었다. 방식이야 다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아빠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빠가 되고, 지금도 어쩌면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천천히 아빠가 되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아빠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작성 : 2018년 12월. 

수정 : 2022년 11월.






작가의 이전글 김진세,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