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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Dec 29. 2021

김진세,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길은 말이 없다. 

쓸쓸한 책이다. 잘 나가는 정신과의사지만 스잔하고 애잔하다. 아니, 정신과의사라서 더 애처롭다.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상처받은 사람을 치료하는 정신과의사가, 어느 한 순간 이 모든 게 답답하고 혐오스러워 9,000km를 날아 저 멀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아갔다. 그의 말대로,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는 3~4주의 시간이면 되는데, 꼭 스페인이 아니라 가까운 서울 근교도 되는데, 그는 하루를 꼬박 날아 홀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아갔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싶어 그는 쓸쓸히 순례길을 찾아갔다. 


외로운 책이다. 잘 나가는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지만, 실패를 두려워했고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대한민국 사람 절반이 살아가는 도시를 두고, 그는 “모두 다른 목적을 가지고 걷는다. 각자의 목적이 다르니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도시인들이 모두 도시의 삶을 그렇게 느끼는지, 아니면 그가 도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말에서 나는 상처받고 외로운 어느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축 처진 어깨와 등을 느낀다. 800km 남짓한 순례길을 다 걸어 행복하다 말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외로움을 느낀다. 


“완전한 완주와 즐거운 순례……. 적어도 내게 이 두 가지가 공존하기는 힘들 것이다.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는 완주를 택하지만 다음 세대들은 즐거움을 선택하기 바란다. 아울러 우리 세대 또한 실패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즐거움을 즐기는 데 야박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은 그래서 더욱 불쌍하다. 돈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좋은 데 가보지도 못하고 너희 아버지 불쌍해죽겠다는 내 어미의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환갑을 겨우 넘기고 떠나버린 내 선친은 즐거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사실 길은 말이 없다. 혹 그 길이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곳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길을 걸으며 성인을 참배하고 스스로를 참회하고 반성한다 할지라도 길은 말없이 그대로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길이 순례길이라면,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이라면,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은 같아질 수 있다. “혼자 걷는 길인 동시에 동행이 존재하는 여행인 셈이다. 혼자의 시간은 혼자대로 즐기고, 동행이 생기면 또 나름대로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기존의 관계처럼 지나치게 끈끈해”지지 않아도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 책이 특별하지 않아서 좋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순례길을 걸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특별한 말이 없어서 좋다. 물론 이 책에도 작가의 자의식이 지나친 문장이 있어 때로는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작가가 순례를 하며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그 역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고, 그래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라면 대다수가 감당해야만 했을 짐 덩어리가 꾸밈없이 드러나 있어서 다행스럽다. 명망 있는 직업이 뭐 대수겠나, 그 역시 외로워 보이는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다. 그걸로 됐다.  


작성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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