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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Nov 24. 2022

강민선, <하는 사람의 관점>.

묘한 개운함. 

강민선 작가의 <하는 사람의 관점>을 읽었다. 임시제본소 출판사에서 2022년 4월에 발간한 책이며, 본문 마지막 페이지 바로 뒤에는 이 '임시제본소'를 설명하는 다음 문장이 짧게 새겨져 있다. "쓰거나 만드는 비정형 작업 공간". 그 바로 옆 페이지에는 강민선 작가가 2017년 10월 이후 발간한 책 목록이 쭉 나와있고, 하나하나 세어보니 <하는 사람의 관점>을 포함해 모두 19권이다. 55개월동안 19권이 나왔으니 2.89개월에 한 권씩 책을 쓰고 펴낸 셈인데, 구도자의 마음이었거나 참전용사의 심정이 아니었다면 이렇게는 못 했을 거 같다.


<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강민선 작가의 색깔이 잘 드러나 있는 문장은 25쪽에 있었다. "무엇과 무엇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사람, 어느 하나로만 정체성을 굳히기엔 도리어 혼란만 가중되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표현할 새로운 용어가 필요합니다. 외로워서도,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이건 그런 문제와는 다릅니다. 저는 각각의 구역에 반쪽만 걸친 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절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마세요!" 2018년 7월 5일에 출판 등록을 한 임시제본소는 강민선 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이다. 


'작업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제목을 달아놓은 글에는 '일'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잘 배어 있었다. "혼자 하기에 알맞은 만큼만 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좋아하는 일을 한다, 이 태도로 얼마나 할 수 있을까요." 글을 쓰고, 쓴 글을 편집하고, 편집한 원고를 제작하고, 제작한 책을 판매하고, 판매된 책의 부수를 확인하고, 팔리지 않는 책의 재고를 점검하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이 모든 일을 강민선 작가는 "혼자 하기에 알맞은 만큼만 한다." 종이를 인쇄하고 인쇄된 뭉치를 제본하는 것 말고는 혼자서 다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신의 글을 자신의 속도에 맞춰 책으로 만들어가는 어떤 한 남자의 일상을 그려봤다. 그 사람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동네를 좋아하면서도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고향에는 그의 조부가 결혼을 할 때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와집이 하나 있다. 그 기와집 마당 저 너머에는 해발고도 1,192m의 팔공산 비로봉이 서 있다. 그 기와집은 그의 선친이 나고 자란 곳이자, 그의 모친이 틈틈이 옛 추억을 간직하며 하나하나 가꾸고 있는 곳이다. 그 사람은 언젠가는 이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작가의 2019년 작품 <도서관의 말들>을 동네 도서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좋은 문장이 많았으나 의아한 문장도 있어 그 리뷰 말미에 이런 사족을 하나 붙였다. "205쪽 첫 번째 문장을 여러번 읽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것은 '악의 평범성'이었다.' 강민선 작가의 판단에는 한나 아렌트가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라는 뜻일 테지만, 또한 학자들의 깊이는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최고'라는 수식어는 조금 과하지 않나?" 그렇게 조금 찝찝한 기분이었는데, <하는 사람의 관점>을 읽고 나니 묘한 개운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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