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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Jul 08. 2022

강민선, <도서관의 말들>.

도서관의 공공성. 

동네 도서관에서 강민선 작가의 2019년 작품 <도서관의 말들>을 읽었다. 이 책의 본문에 따르면, 강민선 작가는 도서관 사서로 4년 6개월을 일한 경력이 있고 현재 1인 출판사 '임시제본소'를 운영하고 있다. '임시제본소'가 어떤 책을 펴냈는지 도서관에 등록된 정보를 살펴보니 2022년 7월 8일 기준 총 5권의 도서를 발간했다. 2018년에 첫 책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를 펴냈고 2022년에 <하는 사람의 관점>을 출간했으니 1년에 1권씩 꼬박꼬박 책을 쓰고 만든 것이다. 출판사 운영도 해야했을 텐데 우선 경의를 표한다.


먼저 17쪽의 다음 문장을 보자. "도서관 서가는 엄격한 규칙과 순서가 존재하는 곳이다. 순간의 실수로 잘못 꽂은 책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미로 같은 곳에서 헛된 시간을 보내고 결국에는 책 찾기를 포기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도서관 사서로서의 경험이 녹아 있고, 공공도서관 이용자로서의 자세가 배어 있다. 작가가 20쪽에 인용한 <위대한 도서관 사상가들>의 한 대목은 참으로 근사했다. "사서로서, 분류학자로 나는 단지 어느 특정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속해 있다." 도서관을 낙원으로 생각한 보르헤스의 말과 같다. 


93쪽의 다음 문장은 모든 공익근무자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수익이 나길 바란다면, 그는 도서관을 운영하기에 가장 부적절한 사람이다. 도서관 건물과 주변 시설, 사서와 이용자는 수익을 창출하는 요소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다. 투입에 대한 결과는 한 세대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나타난다고 해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투입해야만 제 역할을 한다." 적자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곤란하지만, 현 정부처럼 공공 시설을 수익 창출의 도구로 생각하는 건 상스럽기 그지없다.


강민선 작가가 118쪽에 인용한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조만간 꼭 사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 작가는 책에서 다음 문장을 끌어다 썼다. "선생님은 가구 공사야말로 처음 플랜 단계부터 큰 줄기를 정리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상과 의자, 책장은 심장부와 같아서 그 디테일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이용자의 경험의 질이 크게 바뀐다." 나는 일본인들의 이 같은 장인정신을 좋아한다. 공공성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든 집념을 좋아한다. 작은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건 배워야한다.  


나는 <도서관의 말들>을 읽고 나서 작가가 이 책에 인용한 작품 가운데 관심이 가는 책 몇 권의 대출 현황을 살펴봤다. 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대출 중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읽다>는 서가에 꽂혀 있었으나 같은 시리즈로 나온 <말하다>가 대출 중이어서 빌리려다 말았다. <말하다>를 빌려간 동네 주민이 <읽다>를 곧 찾을 것 같았다. 델핀 미누이가 쓴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서가에 있었으나 몇 장 훑어보고는 사서 읽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임시제본소'에서 펴낸 책들도 사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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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蛇足


<도서관의 말들> 205쪽 첫 번째 문장을 여러번 읽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것은 '악의 평범성'이었다." 강민선 작가의 판단에는 한나 아렌트가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라는 뜻일 테지만, 또한 학자들의 깊이는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최고'라는 수식어는 조금 과하지 않나? 학문의 세계에서 '최고'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건가? 개인적인 경험도 이런 생각에 한 몫 했다. '악의 평범성'을 다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수업 시간에 읽으라고 한 그 사람은, 훗날 경기도 성남시장이 되어 각종 구설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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