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Francis of Assisi.
나는 2006년에 가톨릭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내게 세례를 준 곳은 해병대 1사단에 위치한 충무대성당이며, 내가 그곳에서 받은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톨릭 신앙에 충실하다거나 가톨릭 교리에 밝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2022년에도 여전히 무신론과 불가지론 사이에 걸쳐있다.
그 세례식은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처럼 모든 게 속성이었다. 미사는 일주일에 한번만 허용됐고, 교리 수업은 몇 번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루루 몰려가 우루루 끝내는 걸 몇 번만 반복하니 다음 주에 세례식이 있다고 했고 어느새 나는 가톨릭 신자가 되어 있었다. 국방부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합작품이었다.
2006년의 세례식 이후 지금까지 성당에 간 횟수는 다 합쳐도 10번이 채 되지 않는다. 2006년 첫 휴가 때 처음 갔고, 2013년 US 체류 때 몇 번 갔고, 일이 잘 풀리지 않던 2022년 초반에 한 번 갔다. 신앙심이 없으니 잘 안 가게 되고, 다같이 모여서 뭘 하는 걸 피곤해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지쳐 있어서 더더욱 안 가게 됐다.
2021년 하반기에 본 영화 <두 교황>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두 교황이 주고받는 대화는 압권이었다.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와, 변화에 맞춰가는 단 하나의 진리가 서로 빚어내는 갈등 묘사는 훌륭했다. 타협과 변화 사이에서 반목하고 충돌하는 심리 묘사는 탁월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림책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를 지난 주말에 읽었다. 아쉬운 표현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글과 그림 모두 담백했고, 무엇보다 작가 두 명이 자신의 배우자에게 각각 쓴 헌사가 인상 깊었다. 글을 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헌사를 짧게 옮긴다. "우리 가족에게 성 프란시스의 미덕을 보여준 아내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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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1년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역의 아시시 Assisi 마을에서 태어난 한 남자가 '지오반니(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는다. 그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고 노는 걸 좋아했고 누구를 돕는 걸 좋아했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이었다. 돈을 벌고 돈을 모으는 것만 좋아했고 누구를 돕는 건 매우 싫어했다.
지오반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프랑스인'이라는 뜻의 '프란체스코'를 새로운 이름으로 지어 주었다. 프란체스코는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고, 이를 계기로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돕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1226년에 사망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죽은 지 2년이 지난 1228년에 교황 그레고리 4세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