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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Dec 15. 2022

황우섭 · 이현화,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한 편의 성장소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3가지 요소에 주목한다. 어떤 단어가 반복되는가, 어떤 문장으로 표현되고 있는가, 저자는 이 책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대개 담백한 단어가 반복되는 책은 문장 또한 담백하며, 담백한 문장이 반복되는 책은 주장 또한 담백하다. 반면에 넘치는 단어가 반복되는 책은 문장 또한 넘치며, 넘치는 문장이 반복되는 책은 주장 또한 과도하다. 혜화1117 출판사에서 2019년에 펴낸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는 담백한 쪽에 속하는 책이었다. 황우섭 작가의 사진은 담담했고 이현화 편집자의 글은 아담했다. 


반복되는 단어는 이렇다. 한옥, 수선, 기둥, 주춧돌, 구들장, 서까래, 들보, 기와, 처마, 대청, 창호, 나무, 종이, 흙, 빛, 원형, 보전, 40대, 50대, 10년, 비움, 그리고 일. 이 단어들로 얼마든지 넘치는 문장을 만들 수 있음에도, 글을 쓴 이현화 편집자는 담백한 문장을 택했다. 38쪽에 이런 문장이 있다. "집을 고치는 일을 주로 수리修理한다고 하지만 한옥은 수선修繕이라고 한다. 나는 이 집에 이미 쌓인 80여 년의 시간을 존중할 줄 아는, 그 존중을 바탕으로 이후의 시간을 새롭게 이어가려는 내 뜻을 잘 헤아려 줄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하루에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동안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 세월에 따라 일하는 속도가 달라져야 한다. 석공 어른은 예전에는 돌 하나를 다듬기 위해 정을 열 번 때려야 했다면 이제 한 번이면 된다고 하신다. 숙련은 시간을 단축시키되 세월은 체력을 약화시킨다. 숙련된 솜씨만큼 약해진 체력을 잘 다스려 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살 수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짐승처럼 일만 하다 온몸을 망친 내 시간을 떠올렸다. 


책 앞날개에 따르면, 이 책에 글을 담당한 이현화 편집자는 "1994년부터 거의 쭉 출판편집자로 살았다." 이 기간 동안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와 <이중섭 평전>을 편집했고, "어림잡아 100권은 훌쩍" 넘는 책을 만들었다. 일을 하는 동안 1936년에 준공된 개량한옥과 우연히 만났고, 이 집을 구입하고 고쳐나가며 저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다. 나만큼 현장의 작업자들도 집을 잘 짓기를 원했다. 나는 늘 내가 가장 간절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나만 못하다고 여겼던 지난날의 모든 오만이 부끄러웠다."


원제가 '작은 한옥 수선기'였던 이 책을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치 한 편의 성장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넘치고 넘치는 뻔한 한옥 리모델링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을 통째로 반성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느낌이었다. 내 짧은 생각에,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시간과 공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지 않으면 이런 글은 나오지 않는다. 치부와 과오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가 없으면 이런 글은 나오기 힘들다. 연말, 40대 초입에 좋은 책 한 권을 읽었다. 두 분 공저자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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