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율의 독서 Dec 22. 2022

해남 여행 2일차.

두륜산.

06:30 기상. 씻고 정리 후 식당에서 8천원짜리 콩나물국밥 주문. 우려했던 대설특보 수준은 아님. 03시 기준, 해남 전 지역에 대설주의보 발효.


07:58 매표소에서 입장료 지불. 어제도 냈는데 조금 아깝다는 생각. 매표소를 관리하시는 분이 동향이라는 것을 확인. 유불도 균형을 말씀하시다.


08:10 산책로를 따라 등산 시작. 대흥사 대웅전, 동국선사를 지나 두륜산 1,2 코스에 해당하는 길로 올라감. 조금씩 눈발이 굵어지고 바람도 세짐.


08:40 아름다운 눈꽃, 무릎 통증 재발, 넘어가는 숨소리, 서로 각기 다른 모양의 경이로운 돌계단. 그런데 이 계단은 대체 누가 어떻게 만들었지?


09:00 돌계단을 계속 생각함. 로마 가도, 진시황 순시, 정조 행차 그림이 떠오르면서 아찔해짐. 분명 누군가의 값비싼 노동의 결과. 겸허해야함.


10:00 북미륵암 도착. 산기슭에 이런 암자와 법당이 있다니! 암자에 계신 불자 한 분께서 법당으로 온열기를 옮겨줄 수 있냐고, 보시를 부탁하심.


10:05 온열기를 들고 법당으로 이동. 헉, 법당안에 석조 양식의 마애여래좌상이 있었음. 말문은 막히고 온몸은 뻣뻣하게 굳어감. 국보 제 308호.


10:06 승려 한 분이 마애여래좌상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면서 불경을 읊으심. 저 승려의 저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함. 누구를 위한 암송이지?


10:07 내게 보시를 부탁한 노구의 불자가 온열기 전원을 연결해 승려에게 그 온기가 전해지도록 기계의 방향을 조절함. 불자는 사못 경직되어 보임.


10:08 승려는 불자가 온열기를 설치할 때 딱 하나를 질문함. ‘그런 게 있었어요?’ 불자의 대답은 뭉개져서 들리지 않았으나 그 말도 경직되어 보임.


10:09 불자는 법당을 빠져나갔고 승려는 계속 목탁을 두드리며 뭐라고 뭐라고 암송함. 딱딱한 승려는 불자에게 그 흔한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안 함.


10:10 승려와 불자의 관계를 생각함.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아니고, 종교인과 종교인의 관계도 아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딱 주종관계 같았음.


10:11 승려는 목탁을 두드리며 뒤로 흘끗 쳐다봄. 일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몸짓으로 읽힘. 나는 그냥 대한민국의 국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10:12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 법당에서 나와 오른쪽에 있던 북미륵암 3층 석탑을 감상. 암자에서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귤 2개 얻음.


10:15 암자에서 나와 하늘을 보니 눈폭풍 블리자드 수준. 계단에 쌓인 눈을 밟아보니 발목까지 쑥 들어감. 정상 등정을 포기하고 생존에 올인.


10:20 눈으로 덮여 보이지 않는 길을 발로 더듬어가며 하산. 몇 차례 엉덩방아. 대흥사 돌계단에서 사진 및 영상 촬영. 기념품 가게에서 선물 구입.


11:40 하산 완료. 매표소 관리자분께 인사를 드리고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음. 터미널 근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서울행 버스 탑승.


작가의 이전글 해남 여행 1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