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대로 되라.
노동절 아침이다. '근로자의 날'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굳이 '노동자의 날' 또는 '노동절'을 고집한다. 똑 같이 '일하는 사람'을 기리는 말이지만, 근로자는 군말 없이 일만 하는 사람같다. 근로자는 조직의 장점만을 찾아 그곳에 인생을 통째로 맡기는 사람같다. 노동자는 다르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건 똑 같지만, 노동자는 조직의 단점을 발견한다. 노동자는 조직이 개선해야 될 점을 꾸준히 이야기하고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한다. 근로자는 근속 기간이 길고 노동자는 근속 기간이 짧다. 굳이 노동자가 되고 싶은 날 아침, 4월 독서 평가를 한다.
4월에 읽으려고 계획한 도서 가운데 꼼꼼하게 읽은 책은 <태평양 전쟁의 한국인들>과 <김호연의 작업실>이다. <태평양 전쟁의 한국인들>을 읽으며 기록의 가치와 스토리텔링의 위력을 배울 수 있었고, <김호연의 작업실>을 읽으며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의 습관과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또한 <태평양 전쟁의 한국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베트남 전쟁까지 이어지는 세계전쟁사에 관심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었고, <김호연의 작업실>은 '대중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사람이 세상을 관찰하는 방식을 어렴풋이 깨닫게 해주었다.
4월에 계획하지 않았으나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책은 모두 7권이다. 비룡사 출판사에서 '새싹 인물전' 시리즈로 출간한 책 가운데 <윤봉길>을 읽었고, 임시제본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강민선 작가의 신간 <끈기의 말들>을 읽었다. 서선정 작가의 <이야기는 계속될 거야>,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앵무새의 부활>, 수쿼미시족 시애틀 추장이 쓴 <시애틀 추장의 편지> 또한 배운 바가 많은 책이었고, 기차 여행 중에 읽은 <KTX 매거진> 2023년 4, 5월호 또한 인상에 깊이 남아 있다. 이렇게 문득 삶 속에 파고드는 책에서 놀랄 때가 많다.
5월에 읽고 리뷰까지 쓸 책은 모두 4권이다. 어문학사 출판사에서 펴낸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의 여섯 번째 기획물인 <아시아 · 태평양 전쟁>, 유유출판사에서 2015년에 펴낸 <단단한 사회공부>, 교유서가 출판사에서 2016년에 펴낸 <교양인을 위한 로마사>, 효형출판에서 2006년에 펴낸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이 책상 위에서 딱 대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단단한 사회공부>는 2023년 하반기 그리고 그 이후의 공부에 마중물이 될 것 같고,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은 읽고나면 왠지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을 주는 책이다.
5월은 2023년 상반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달이다. 작년에 써놓고 마무리하지 않은 원고를 끝내야 하고, 회사에 제안할 두 개의 기획서를 제때 매듭 지어야 한다. 브런치스토리 이외 또 다른 플랫폼에도 접근해볼 계획이며, 이를 위해 이른바 '읽히는 글' 또는 '팔리는 글'을 연습해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중요한 달이라 결의도 그만큼 충만한 달이지만 초조하거나 불안한 마음은 그리 들지 않는다. 계획한 것들을 시간에 맞춰 끝낼 수 있을 것 같고, 완성보다는 마감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나니 세상 두려운 게 싹 사라졌다.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