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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Jan 13. 2022

김훈, <개>.

개는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보리는 진돗개 수놈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엄마가 출산을 할 때 아빠는 곁에 없었고, 그게 문제될 건 아니었다. 보리는 발바닥의 굳은살로 세상을 뛰어다녔다. 얼굴에 돋아나는 수염으로 세상을 알아나갔다. 보리가 태어난 마을에 댐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땅도 하나 둘 버려졌다. 몇 백 년을 살아온 땅이 물로 가득 찼다. 형제들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엄마는 개장수에 팔려갔다. 보리는 주인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있는 바닷가 마을로 고향을 옮겼다. 


새 주인님은 어부였다. 배는 작았고 낚아 올리는 물고기도 적었다. 보리는 더 단단해진 굳은살과 더 돋아난 수염으로 세상을 견뎌나갔다. 보리는 청년이 되었다. 새 주인님의 첫째 이름은 영희였다. 보리는 영희를 따라 학교에 갔고, 그곳에서 흰순이를 우연히 만났다. 흰순이는 암놈이었고 시골의 보통 개였다. “흰순이의 눈은 노려보는 눈이 아니라 깊게 들여다보는 눈이었다. 달려들어서 싸워야 할 것들을 노려보는 눈이 아니라 세상을 받아들이는 눈빛이었다.”(p.128)  


보리는 흰순이가 자꾸 떠올랐다. 흰순이를 찾으러 가는 길에 진하고 독한 오줌 냄새를 맡았다. 사나운 수놈의 냄새였다. 이름은 악돌이였고 도사견과 불독이 섞인 개였다. 악돌이는 아무 데나 짖는 개였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짖어댔고, 차려입은 사람에게는 짖지 않았다. 보리는 악돌이가 “한심한 개라는 생각이 들었다.”(p.165) 보리와 악돌이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보리는 악돌이와 붙었고 둘 다 깊은 상처를 얻었다.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인님은 물에 빠져 죽었다. 추석이 다가올 무렵, 바다에 고기가 가득했다. 배는 작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고기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주인님도 배도 물속에 가라앉았다. 영희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도시로 떠났다. 보리는 할머니와 바닷가에 남았다. 이웃 마을에 돼지 콜레라가 돌았고, 산 돼지도 죽은 돼지와 함께 땅속에 파묻혔다. 악돌이는 돼지를 치던 주인집 개였다. 보리는 흰순이를 찾으러 갔다. 악돌이는 없었고, 흰순이 집에는 악돌이를 닮은 새끼 개가 뒤엉켜 놀고 있었다.   


할머니는 도시로 떠났다. 보리는 혼자 남았다. 보리는 다짐한다. “나는 달리고 냄새 맡고 싸워야 한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고, 나는 그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릴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전히 흰순이와 악돌이들이 살아 있을 것이다. 그 개들이 살아 있는 것은 이 세상이 본래 그러한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p.221) 보리는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다가올 날들을 근심하지 않는다. “개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일 뿐이다.”(p.65)  


**

입대를 준비하던 2005년에 처음 읽고, 군역을 마친 2009년에 다시 읽었다. 2021년에 나온 개정판을, 불혹을 돌파한 2022년 1월에 한번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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