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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Jan 08. 2022

<책이라는 선물>.

책이라는 협력.

오묘한 책이다. 이어달리기 교본 같기도 하고, 생명 탄생의 신비를 다룬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여러 직업인들의 업무 매뉴얼 같기도 하고, 한 분야를 깊게 판 장인들의 소회 같기도 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이라는 세계에서 자신이 맡은 영역을 가꾸고 다지는 지침서 같기도 하다. 이 책에 참여한 이들은 편집자, 북 디자이너, 교정자, 인쇄인, 제본인, 총판인, 영업인, 서점인, 이동식 책방 주인 그리고 비평가까지 망라한다. 책의 부제는 '책을 만들고 팔고 알리는 사람들이 읽는 사람에게'이며, 제목은 감사하게도 '책이라는 선물'이다.


이 책 전체를 압축한 표현은, "70년 역사의 인쇄 회사를 4대째 맡고"(p.128) 있는 인쇄인 후지와라 다카미치의 문장이다. "자신이 맡은 구간에서 있는 힘껏 달릴 뿐 아니라 앞구간 주자가 지치면 서포트하겠다는 자세로 영역을 넘나들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앞뒤 구간이 조금씩 겹쳐져 협력하는 것이 앞으로의 책 제작에 요구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p.119) "종이 한 장을 인쇄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는 진심을 담아 "한 권 한 권 정성을 쏟아" 책을 만들고, 그것이 "인쇄인의 사명이라고 생각"(p.123)하며 책을 만든다.


나는 후지와라 다카미치의 이 문장에서, 작년에 읽었던 이진 편집자의 <인문교양책 만드는 법> 한 구절을 생각한다. "글을 쓰는 것은 홀로 하는 고독한 작업이지만 그것이 책이라는 형태를 갖추기까지의 과정은 어느 하나 빠짐없이 다 협업이다. 같이 일하는 모든 사람이 시간을 덜 들이고 고생을 덜 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는 것도 직업윤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p.105)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좋은 대화 상대가 되는 일이다."(p.159) "'책'이라는 세계 안에서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과 꾸준히 교류를 해 나가는 것이다." (p.192)


다시 <책이라는 선물>을 읽어본다. 북 디자이너 야하기 다몬의 말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많은 것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생활하며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 모른다. 무엇에 기뻐하는지 무엇에 슬퍼하는지를 모른다."(p.79) 나는 44개월을 온라인 서점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매일 보는 게 책이고 매일 만지는 게 책이었지만, 나는 책 한 권의 신비를 알지 못한 채 일을 했다. 읽고 싶어도 못 읽는, 보이는대로 털어내지 않으면 눈에 치여 원망스럽기까지 했던 게 책이었다.


<책이라는 선물> 마지막에 실려있는 비평가 와카마쓰 에이스케의 말이다. "사람은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많이 가진 자를 존경한다. 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을 경애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에 매료된 사람에게 재산의 많고 적음은 그 사람을 존경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p.260) 이 문장을 읽으며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의 특징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심성이 곱다, 심지가 굳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잘한다. 연초에 선물같은 책 한 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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