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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Jan 06. 2022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기다리고, 정중하게.   

우리 강아지, 안녕? 아빠야.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있니? 오늘은 또 뭘 하며 노는 지, 밥은 잘 먹는 지 아빠는 참 궁금하단다. 아빠는 지금 책을 읽고 있어. 작년 여름에 읽은 책인데, 다시 한번 스르륵 넘겨보고 있어. 제목은 <어린이라는 세계> 이고, 작년 7월에 엄마 아빠랑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아빠가 챙겨간 책이야. 아빠의 잘못을 알려고, 우리 강아지와 친해지려고 가방에 넣어둔 책이지. 오늘 아침 아빠가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우리 강아지가 "아빠, 정말 보고 싶었어!"라고 했잖아? 아빤 정말 고마웠어.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었거든. 그간 아빠에게도 우리 강아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나봐. 고마워.  


강아지야, 아빠가 다시 읽어도 좋은 문장은 이거야.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주면, 어린이는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때, 멋진 말이지? 우리 강아지가 아직 글자를 읽지 못해 이해가 안 되겠지만, 아빠는 이 문장을 읽고 배운 게 참 많았어. 작년 같으면 "아빠 안 좋아" 라는 강아지의 말에 아빠는 속이 상하고 화도 났을텐데, 이젠 이 말이 "아빠가 엄마보다는 안 좋아" 라고 들리고, 강아지가 엄마를 정말 좋아해서 아빤 참 고마워. 엄마를 아끼고, 강아지를 기다리며, 노력하는 아빠가 될게. 꼭. 


강아지야, 이 문장을 다시 읽다가 예전에 아빠가 읽었던 책이 떠올랐어.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님이 쓰신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는 책이야. 아빠가 책에 밑줄 쳐놓은 문장들을 한번 들어볼래? "끈질긴 인내가 최고의 무기일 듯싶다. 기다려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아파하는 청소년들이 우리 주위엔 참 많다. 그들에게 물론 심리 치료도 상담 치료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냥 편하게 같이 있어 주고 도가 넘는 왜곡된 투정도 아무 대꾸없이 받아 줄 수 있는 낙서장 같은 어른이 꼭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화가 나는 대로 부담없이 긁적이기도 하고 찢기도 할 수 있는 그런 낙서장 말이다." 어때, 좋지? 


강아지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쓰신 책도 생각이 났어. <교황 프란치스코>라는 대담집인데, 아빠가 포스트잇으로 표시해 둔 문장을 한번 옮겨볼게. "인내를 이룬다는 것은 인생 자체가 평생교육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내를 이룬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인생을 전개해나갈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뜻입니다. 좋은 부모란 자식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방향을 제시해주지만, 그 후에는 자식이 스스로 본인과 타인의 실패를 통해 배우고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때, 멋진 말이지? 아빠가 이제부터 어떤 걸 공부해야 할 지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볼게. 


우리 강아지, 마지막으로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들을 적어볼게.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 강아지가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걸 이젠 안 하려고 아빠가 노력할게. 강아지가 아빠한테 요청할 때만 곰 흉내를 낼게. 강아지야, 다음 달이면 어린이집을 졸업하는구나. 미리 축하하고, 그동안 잘 커줘서 아빠가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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