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예술, 작가.
소설 <닥터 지바고>를 쓴 러시아 문학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Бори́с Пастерна́к (1890~1960). 그의 시 '칼새'를 읽다가 문득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생각나 정말 오랜만에 그의 시집을 열어봤다. 1983년에 발표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전문은 이렇다.
"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2001년에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이 시를 처음 소개 받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 붙고 말았다. 글자 몇 개로 그려낸 시대의 모습이, 글자 몇 개만 가지고 이런 시를 써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22년 만에 다시 읽은 그의 시는 더욱 무서운 괴물이 되어 올해 내 나이가 몇 살인지 계속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