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묻지 않는 폭력의 시대.
제목만 <메이드 인 경상도>이지, 내용은 경상도를 뛰어 넘는다. 경상도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묘사했고 그 기원을 추적했다. 그 특징들이 경상도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했고, 그 원인을 더듬어 나갔다. 경상도를 두둔하거나 경상도를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경상도는 왜 그런지 차근차근 짚어보고, 세월의 풍랑 속에 경상도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말들을 생각한다. 작가는 유신정권 때 대구에서 태어나 30년간 대구에서 살았다.
작가는 1974년에 태어났다. 작가 판단에 그 시절은 폭력의 시대였다. 쎈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었고 그래서 생존이 목적이었다.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했던 시절이었다.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었다. 생각은 필요없는 것이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태어났고, 나자마자 피난을 갔고,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작가는 그런 환경을 있는 그대로 몸에 새겨 넣었다.
작가의 유년 시절 일화도 이 시대의 한계가 빚어낸 것이었다. 사내 무리들이 힘을 겨뤄 우열을 가리던 시대였다. 이간질과 중상모략이 난무했고 주먹다짐은 일상이었다. 작가는 태생적으로 폭력을 무서워하는 기질이었으나, 사내 놈들은 그런 걸 배려하지 않는다.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한 비열한 사내가 작가의 우정을 찢으려 했을 때, 작가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친구들이 얻어 터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1979년에서 시작해 1990년이 시작되기 전에 끝난다. 산업화가 절정을 치닫던 때였고, 민주화도 최고조의 긴장을 유지한 때였다. 산업화는 생각과 반성을 묻지 않는 방식이다. 오로지 직진만 가능했고, 그런 사람들을 강제로 생각하게 할 수는 없었다. 1980년 광주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구 사람들도 알음알음 그 소식을 들었으나,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습관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모르고 사는 게 속편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한쪽 손과 다리가 불편하고 새마을 문양이 박힌 모자를 늘 주춤하게 쓰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행색도 직업도 변변찮은 남자다. 이 남자는 종이로 이것저것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한다. 다들 나이가 들고 늙어갈 때도 이 남자는 늘 그 모습 그대로다. 폭력의 시대에 경상도가 잊어버린 말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작가가 영웅이라고 한, 이 변변찮은 남자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돼! 자연보호 안 배웠나?" 같은 보잘 것 없는 한 마디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