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줄 아는 마음".
※ 개암나무 출판사에서 펴낸 '위대한 책벌레' 시리즈를 꾸준히 읽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연암 박지원 선생을 다룬 김주현, 유기훈 작가의 <딴지 도령과 걸어 다니는 책>(2015)을 읽었고, 여러 문장 가운데 '책'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연암 선생의 말씀이 인상에 깊이 남아 이 곳에 그대로 옮긴다.
"책상 위에 올려진 책만 책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책이다. 배울 줄 아는 마음, 볼 줄 아는 눈, 관찰하고 발견하고 깨닫고 느낄 줄 아는 마음, 그것이 있다면 세상에 책 아닌 것이 없지.
오늘 본 엄행수라는 자는 책 중에서도 아주 고결한 책이다. 엄행수는 구월에 서리가 내리고 시월에 살얼음이 얼어도 뒷간의 남은 찌꺼기는 물론이고, 말똥, 소똥, 닭똥, 개똥, 거위 똥, 돼지 똥, 참새 똥까지 똥이랑 똥은 모조리 걷어 간다. 마치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똥을 여기저리 부지런히 나르지.
왕십리의 배추, 석교의 가지 · 오이 · 호박, 연희궁의 고추 · 마늘 · 부추 · 파, 청파의 미나리, 이태원의 토란 같은 특산물을 아무리 기름진 땅에 심는다 하여도 엄씨의 똥거름이 없이는 실한 채소로 자랄 수 없지.
사람들은 저 엄행수가 똥과 거름을 지고 나른다며 불결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그의 성실하고 우직한 태도만큼은 지극히 향기롭다. 그의 겉모습은 더럽기 짝이 없지만 그가 삶을 받아 들이는 자세는 지극히 곧고 꿋꿋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벗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벗을 넘어 내게는 스승과 같은 분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