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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Mar 02. 2022

이솝, <이솝 우화>.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이솝 우화>를 읽었다. 딸아이와 함께 읽으려고 샀지만 정작 그녀는 별 관심이 없어 내가 그냥 읽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비룡소에서 출간한 김석희 선생의 번역본이고, 숲 출판사에서 펴낸 천병희 선생의 번역본도 함께 샀다. 비룡소 책은 딸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다시 권해줄 판본이며, 숲 책은 나혼자만 읽고 당분간 책장에 꽂아둘 판본이다. <이솝 우화>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초등학생 때 단편 몇 개를 들어본 게 전부였는데, 읽어보니 왜 이솝 우화 이솝 우화 하는 줄 알겠다. 일단 재밌고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이 다채롭다. 꼭 이솝의 교훈을 따라가지 않고도 열린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에 여러번 읽은 에피소드는 '아기 달과 엄마 달'이며, 여기에 전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한번은 아기 달이 엄마 달한테 몸에 잘 맞는 옷을 만들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엄마 달이 대답했습니다. 네 몸에 맞는 옷은 만들 수 없어. 너는 초승달이 되었다가 보름달이 되었다가 하잖니. 그사이에는 또 이랬다 저랬다 하고. 그렇게 변덕을 부리니, 네 몸에 맞추기 힘들어." 이 이야기 끝에 이솝이 덧붙인 교훈은 "변덕스러운 사람은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냥 넘어가려다 다시 읽어보니 교훈이라는 게 꼭 하나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덕스러운 사람은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표현은, 육아에 너무나 지쳐 아이를 원망하는 지경에 이른 부모의 한탄일 수 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자는, 패기 넘치는 신입 사원을 못마땅해하는 중간 관리자들의 비난일 수 있다. 현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의 편견일 수 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일부 정치인들의 오만일 수 있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확실한 것에 의탁하는 상처받은 종교인들의 기도일 수 있다. 모습을 자꾸 바꾸는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다시 써야하는 현대인들의 탄식일 수 있다. 


엄마 달의 한탄이 이해된다. 딸아이는 매일매일 아기 달이다. 레고하자 했다가 이내 블록을 가지고 온다. 내가 조금만 지루해하면 잡기 놀이를 하자고 한다. 몇 번 잡다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종목을 바꾼다. 숨바꼭질 하다가 갑자기 아기돼지 삼형제의 막내 돼지를 하고 빨간 모자의 늑대가 되기도 한다. 토토로 책을 읽어달라고 가지고 왔다가 내가 조금만 지친 기색을 보이면 토토로 틀어달라고 한다. 다행이다 싶어 영화를 틀어주면 잠시 조용하다가 또 그림 그리자 한다. 내가 그림을 못 그리니 잠시 그리다 또 종이 비행기를 접아달라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을 보고 싶은 형상으로 만들어놓고 보고 싶은대로만 본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게 세상임에도 세계를 자꾸 인간 뜻대로 건설하려한다. 인간이 만든 저 도시를 봐라, 인간이 만든 저 제도를 보라고 하지만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달은 같은 달이지만 늘 모양을 바꾼다. 모양은 그대로인데 돌다보니 다르게 보이는 게 또 달이다. 보름달을 보고 너는 왜 반달이 아니냐고 너는 왜 초승달이 아니냐고 할 수는 없다. 세상을 건축하려는 의지는 있어야겠지만 한계를 분명히 지어야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 달은 어제의 아기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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