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강부약 抑强扶弱.
눈을 치웠다. 넉가래로 밀고 빗자루로 쓸고 삽으로 얼음을 깼다. 꽝꽝 얼어버린 곳에는 염화칼슘도 뿌렸다. 구역을 나눴다. 나는 사무실 앞을 맡았고 동료들은 업무 공간 주변을 맡았다. 책임구역을 굳이 나누지 않았으나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했다. 눈을 치우지 않으면 일이 안 된다. 미끄러워 사람이 다치고 장비가 헛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책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라 제설작업은 필수다. 일을 하면서 눈을 치우기는 이번 직장이 처음이다. 군역을 산 곳은 눈이 거의 안 오는 지역이었고 이전까지의 회사에서는 눈을 치워주는 분들이 따로 있었다.
눈을 치웠다고해서 눈이 바로 녹지는 않았다. 시간에 맞춰 일을 해야하니 제설에 전념할 수 없었고 제설도구가 해결할 수 없는 구간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구름에 가려 햇볕이 쫙 들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약인 건 약인 게 눈은 옅은 햇살을 받으며 서서히 녹아갔다. 넉가래에 밀린 눈과 빗자루에 쓸린 눈은 점차 물이 되어가고 있었고, 삽질에 깨진 얼음과 염화칼슘이 박힌 얼음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오전 업무가 끝나갈 무렵에는 구름도 거의 걷혀 햇볕이 수직으로 내려 꽂았고 이동이 필요한 곳에는 물만 윤슬처럼 반짝였다.
눈을 치운 곳은 확실히 달랐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밀고 쓴 곳에는 눈 없이 바닥만 보였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해가 질 무렵에도 눈이 뒤덮인 채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눈을 치운 곳에도 엄연히 차이가 있었다. 두 번 밀고 두 번 쓴 곳은 햇살이 들자마자 눈이 말 그대로 눈 녹 듯 사라졌고 한번만 밀고 한번만 쓴 곳은 햇살이 쌓이고 쌓여야 천천히 없어졌다. 제설 구역이 명확치 않은 곳, 내 구역인지 저 사람 구역인지 확실치 않은 곳은 아예 안 치운 곳보다는 제설 상황이 좋았으나 마치 바다 위 외딴 섬처럼 찝찝하게 남아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치우며 생각했다. 이것이 정치다, 정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불편한 것을 치우는 게 정치다, 위험한 것을 치우는 게 정치다, 사각지역을 들여다보는 게 정치다, 눈이 쌓여도 잘 녹는 곳은 그 기능이 지속될 수 있게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하며, 눈을 치우고 치워도 계속 쌓여 불편하고 위험한 곳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능한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안전지대로 만들어야한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햇볕을 기다려야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마냥 태양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듯이 정치인은 사람과 제도를 탓하지 않아야 한다.
눈을 치워놓고 생각한다. 눈은 또 온다, 겨우 어제 오늘 쌓인 눈만 치웠다, 겨울은 아직 안 끝났고 이번 겨울이 끝나도 내년 겨울이 돌아온다, 내년 겨울이 돌아오면 내년 눈이 다시 오고 또 눈을 치워야한다. 눈 치우는 사람이 적거나 눈 치우는 도구가 부족하면 눈 치우는 데 시간은 더 들어가고, 눈 치우는 사람이 많아지거나 눈 치우는 도구가 늘어나면 눈 치우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줄어든다, 이것이 정치다, 정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을 안전하게 만드는 게 정치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이 곧 제설작업의 요체요 정치의 요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