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기개.
<열린책들에서 만든 책들 1986-2021>을 일람했다. 2021년 3월 10일에 초판 1쇄가 나왔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같은 해 4월 30일에 출간된 초판 2쇄이다. 본문 쪽수는 689쪽, 규격은 12.7cm * 21cm이며, 애석하게도 비매품이다. 앞 표지 면지 바로 뒤 '일러두기'에 이 책의 목적이 적혀있다. “이 도서목록은 1986년 1월 7일 창립 이후 주식회사 열린책들에서 펴낸 2,074권의 책을 소개한 것입니다. 이 도서목록은 2021년 2월 28일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책값과 근간 도서의 제목 등은 이후 사정에 의해 변동될 수 있습니다.”
본문 초반 3분의 1은 '열린책들의 작가들'로 구성되어있다. 움베르토 에코,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열린책들의 중개로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소개된 작가들의 짧은 연대기와 그들의 작품 목록이 간략히 설명되어있다. <장미의 이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를 소개한 대목을 보자. "움베르토 에코가 2016년 2월 19일, 2년간의 투병 끝에 췌장암으로 밀라노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밀라노 스포르체스코성에서 마랭 마레와 코렐리의 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장례식을 거행했고,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본문 중반 3분의 1은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영미 문학', '러시아 문학', '프랑스 문학', '기타 문학' 등 '열린책들의 작가들'에서 다루지 않았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속한 작품은 민음사,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하는 작품과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는데, 한 작가의 작품 전체를 기획하여 소개하는게 열린책들 출판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알렉산드르 뿌쉬낀 전집,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지크문트 프로이트 전집,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등이 이 기획에 속한다.
본문 후반 3분의 1은 문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의 책과 열린책들이 2005년에 설립한 예술 브랜드 미메시스에서 발간한 도서 목록이 소개되어있다. "열여섯 살까지 학교에 가본 적"도 없었으나 "케임브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얻기까지 남다른 배움의 여정을" 다룬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도 볼 수 있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거대한 불평등>, <불평등의 대가>도 확인할 수 있다. 632쪽부터 689쪽까지는 1986년 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열린책들에서 발간한 도서의 서지사항이 나온다.
나는 이 책을 2021년 6월 4일에 구했다. 직전 직장에서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마지막 달이었고, 하루 쉬는 날이었다. 이 책의 출간을 알리는 보도를 우연히 읽게 됐고,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곧장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으로 갔다. 뮤지엄 1층에 마련된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열린책들에서 펴낸 책이 벽을 에워싸고 있었고, 흔한 상장이나 상패는 볼 수 없었다. 오로지 책으로만 승부를 볼 거라는 기개가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결혼식 때 사회를 봐준 친구에게 연락을 해, 여기와서 이 책 하나 가져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