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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Apr 23. 2022

알베르 카뮈, <페스트>.

공포, 불안, 진실, 침묵. 

코로나 시대에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더 자세히는, 코로나 3년차에 카뮈가 1947년에 탈고한 <페스트>를 읽었다. <페스트>의 공간은 아프리카 알제리의 오랑시市이며,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나가는 1940년대이다. 오랑시市의 인구수는 20만이었으며, 알제리는 1962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코로나-19의 공간은 지구 전체이다. 2019년에 발발했고, 2022년 4월 23일 00시 기준, 5억 7백만명이 이 바이러스로 사망했다. 카뮈가 겪은 페스트는, 문명세계 전체가 겪은 페스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책을 읽어야한다.  


코로나가 전 세계의 질병이 된 2020년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확진자가 1명 발생했을 때는 그런가보다했다. 확진자 숫자가 한명씩 늘수록 조금씩 불안해했다. 종교 단체에서, 밀집 지역에서, 빈곤 지역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니 세계는 공포에 휩싸였다. 방역 현장은 마비됐고, 의료진들은 탈진해갔다. 거리에 인적은 드물었고, 가게의 문은 닫혔다. 불행의 시기에도 재미를 보는 사람들은 있었다. 제약 회사 주식을 미리 사둔 이들은 호기를 맞았다. 택배 회사 사장들은 호황을 맞았다. 이들을 비난하는게 아니라, 이 세계가 원래 그렇다는 말이다. 


코로나 3년차인 2022년의 세상을 바라보자. 2020년에 비해 많은 게 달라졌다. 백신 접종이 상식이 됐고, 자가진단키트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고열 환자도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더 이상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지 않는다. 아프면 쉬어야한다는게 정상적인 생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이 바이러스는 결코 소멸되거나 종식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식으로 정착되고 있다. 백신 접종 횟수에 비례해 대체요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넘치는 플라스틱 용기를 보며 그래도 이건 아니다싶다는 생각이 점점 퍼지고 있다.  


<페스트>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사람이 어찌 같을 수 있겠냐만, 모두 코로나 시대에도 볼 수 있는 유형들이다. 전염병 초기에는 모두 불안해한다. 익숙해지면 긴장도 도덕도 느슨해진다. 느슨해지는 틈을 타 전염병은 역병이 되고, 세계는 다시 긴장하고 늘어지고를 반복한다. 나는 <페스트>에 나오는 여러 인물 가운데, '조제프 그랑'이라는 사람에 주목한다. 그는 시청 공무원이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라틴어 공부 같은 재산 축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다. 힘들어도 웃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내가 이 책의 한 문장으로 꼽는 표현은 이거다. "공포가, 그리고 공포와 함께 반성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이 문장은 단어를 바꿔가며 반복되고, 사건과 인물도 이 문장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사라진다. 반성이라는 것은, "관찰하고 깊이 생각해본다"는 것은 공포가 피부에 파고들 때라야 비로소 시작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봐라봐야한다. 무엇을 안다며 얌전히 있지 못하고 철없이 촐랑대서는 안 된다. 생각할 여유를 억지로라도 만들어야한다. "불행의 순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진실에, 즉 침묵에 익숙해진다.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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