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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좀 나갔다 올게

엄마의가출일기


지금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프라하로 가출을 했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아 튼실 한 허벅지를 아주 세게 꼬집었는데, 아픈거 보니 꿈은 아닌 것 같다. 


한달 전 남편이 말했다. 


“일주일 정도 휴가를 줄게. 자유시간을 즐기고 와.” 


잘못들었나 싶었지만 입이 귀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마 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태어난지 100일도 안 된 둘째도 있는 데 혼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사실 우리 부부는 1년에 1번 서로에게 휴가를 주고 있는데, 자기 혼자 집 을 나가는 휴가라 ‘허락된 가출’이라 부르고 있다. 작년 4월 날 좋은 날에 제주도로 훌쩍 떠났었는데, 남편이 딸아이 하나 만 봐주면 되다 보니 마음의 부담감도 덜했다. 그리고 그가 눈덮인 제주도로 가출했을 때 비록 나는 만삭 임산부였지만 첫째 때 보다 더 씩씩한 임산부라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우주최강 고집 4살 딸과 응애응애 밖 에 모르는 세상 빛을 본지 두달 조금 지난 아들을 아빠가 혼자 다 돌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름 육아달인임을 나 에게 인정받고 있지만, 꼬박 6일 동안 홀로 두 아이를 챙긴다 는 것은 엄마인 나도 힘든 일인터라 일주일이 넘도록 고민했 다. 고심끝에 2박 3일 정도 제주도로 떠나겠다 말했는데, 그의 반응은 예상 밖 이었지만 또 맞는 말이었다. 


“제주도 갈거면 가지마.” 


매번 홀로 떠나는 여행을 제주도로 가는 것도 식상하고, 게다 가 일주일이라는 황금 같은 시간을 고작 2박 3일 밖에 안 쓴다 니 스케일이 너무 작은 나였다. 이 꿀같은 제안이 의심스러워 계속 정말 가도 되냐 돼 물었고, 남편의 말 한마디에 나는 가 출 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나 이미 휴가썼어. 그리고 이참에 유럽이라도 다녀와. 언제 혼자 다녀와보겠어.” 

“오 마이 유럽!!!!!!!!!!!!” 


이태리 허니문을 멋지게 예약했다가 임신 소식에 산산히 무너 졌던 나의 첫 유럽, 그 곳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지금 생겼다. 아이가 생겨 못 갔는데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갈 수 있게 되다 니 얼떨떨했다. 유럽 땅 한번 밟아 보지는 못했지만, 딸 아이 의 태명을 ‘태리(이태리 허니문과 맞바꾼 보물)’로 지은만큼 유럽은 우리 부부에게 특별했다. 여행을 못 간 아쉬움은 아이 의 출생으로 씻은 듯 내려갔지만 늘 마음 한 켠에서는 유럽 어 느 골목의 중세 시대 돌바닥을 거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10 시간 이상 비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놓치면 바보잖 아, 암 그렇고 말고.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혼자 떠나기 좋으며 짧 은 시간에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는, 걷기 좋은 프라하로 떠나 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지금, 믿기 어렵겠지만, 프라하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아직 비행기가 뜨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은 이미 프라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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