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가출일기
아이와 함께 여행을 제법 다녀본 엄마들은 짐 싸는 것이 귀찮 아서라도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잘 알것이다. 특히 두 돌 전 아이와 함께 다닐 때는 짐이 한 가득인데, 혹 빠지는 것 이 있을까 염려되어 몇번이고 체크를 하는 짐싸기는 이쯤되면 거의 프로젝트급이다.
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은 정말 심플하다. 두세벌의 옷, 속 옷, 세면도구 끝. 이렇게 심플한 짐싸기는 오랜만인지라 짐을 쌀 때부터 이미 행복했다. 28인치 캐리어에 빈 공간이 남는 것 도 마냥 신기하고 기뻤고, 싱글이 된 듯한 행복에 젖었다. 아 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며 그저 내 몸뚱아리 하나만 신경쓰면 되는 여행이라니, 출발하기 전부터 몸이 가벼워진듯하다.
생각해보면 ‘짐의 무게’가 곧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였다. 누 구의 아내,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디를 가던지 많은 물건 따위 는 필요치 않았고 간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안 하거나 사면 되니까 뭔가 빠져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난 후부터는 집 앞 편의점을 가 더라도 그냥 가는 법이 없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기저귀 와 물티슈, 손수건은 필수였는데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서도 아 주 조금 짐이 가벼워졌을뿐 변함은 없다. 여행을 위한 가방을 싸다보니, 이것이 곧 내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무게와 같 다는 마음에 이번 여행만큼은 세상 간단하게 챙겨 떠나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가벼운 캐리어를 들었을 때 비로소 내 가 혼자라 느낄것만 같아서다. 사실 작년 제주여행에서는 백팩 하나 딸랑 메고 홀연히 떠났었는데, 그 상쾌한 기분은 이루말 할 수 없다. 이번에는 거리과 기간이 제법 긴 만큼 백팩으로는 감당이 안 되었지만 최대한 가볍게 짐을 싸기로 했다.
물론 돌아올 때 이 캐리어는 수하물 규정 23kg이 넘어, 23kg 에 맞추기 위한 한 여자의 치열한 몸부림을 경험하게 된다. 이 놈의 물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