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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일기

엄마의가출일기


잠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요즘 말로 ‘자부(자유부인)’가 되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쓸 예 정이다. 이 황금같은 시간을 그저 눈과 귀, 입호강만 하고 끝 내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기록이라는 것을 해보려한다. 초등학 교 시절 매일매일 부지런히 쓰던 일기장, 사춘기 오글거리는 중2 감성을 가득 담은 비밀 노트, 생각만해도 심장이 콩닥거리 고 얼굴이 발그레지는 연애감정을 담아 냈던 나의 옛 추억들이 떠오른다. 종이에 펜으로 한자한자 눌러담은 이야기들은 이따 금 그 어느날이 그리워질 때 꺼내보기 딱 좋다. 


나이 서른넷 내 곁에 남은 기록은 두 아이를 만나기 위한 설렘 이 가득 담긴 태교 일기장뿐인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행복하 지만 조금은 무거운 ‘아이 둘 엄마’라는 타이틀이 주어진 현재 의 나를 담아내고 싶다.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 그리고 요즘 의 마음을 들춰보고 싶어진다. 그동안 감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아픈 상처를 하나씩 꺼내어 보며 나와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을 헤아리려 한다. 예쁘고 당당한 모습뿐만 아니라 아프 고 찌질하며 못난 것도 나의 일부이지 않은가. 그동안은 그 이 면을 들춰보는 것이 꽤나 겁이 났다. 아픈 곳을 괜히 건드렸다 가 겉잡을 수 없이 상처가 번지면 어쩌나, 내 못난 모습 때문 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면 어쩌나 등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좋든 싫든 과거의 내가 겪어온 삶 덕에 지금의 내가 있 을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하고 사랑받았던 만큼 밝고 나눌 줄 아는 지금의 내가 되었고, 아팠고 치열했던 만큼 책임감 강하 고 성실한 나를 만들 수 있었다. 이 기억마저 희미해지기 전에 내게 물어보려 한다. 그때 너는 괜찮았는지, 지금의 너는 어떤 지. 그리고 여행의 순간의 행복한 기억 또한 모두 담아보려 한 다.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지나온 추억을 곱씹으며 나오는 아련함 이었다. 행복했던 기억 속에서는 그 따뜻했던 온기를 다시한번 느끼며 무력감과 자괴감을 깨부수고, 아팠던 기억 속에서는 그 시간을 견뎌온 힘든 과정을 생각하며 내 눈 앞에 닥친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자신감을 얻는다. 그 기억들을 남겨보려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겨우 깨닫는다. 


시작되는 순간 끝나버리는 것들과
 내 곁을 맴돌다 사라진 사람들이
 실은 여전히 내 삶에 꽤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날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는 사실을. 


무릇 가장 소중한 것이 가장 먼 곳으로 떠나간다. 그러므로 서로가 세월이라는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전에, 모든 추억이 까마득해지기 전에,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부단히 읽고 헤아려야 한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하다. 우린 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기주, 한 때 소중했던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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