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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엄마말고, 나

엄마의가출일기


투어는 아침 9시, 구시가지광장 얀후스 동상에서 시작되었다. 전날 프라하에 도착해서 구석구석 거닐었던 터라 구시가지광 장까지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젯밤 생각보다 찬 바람에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날씨가 추우면 어쩌나 했던 걱정과는 달리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비타민D 합성을 절로 부르는 햇빛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처음 경험해보는 터라 조금의 긴장감도 있었 다. 광장 벤치에는 이 곳이 광화문 광장인지 헷갈릴정도로 한 국인들로 가득했는데 모두 투어 신청자들이었다. 그들 대부분 은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신혼부부들이었다. 행여나 여자 친구, 아니 신부의 얼굴이 그을릴까봐 내리 쬐이는 햇빛을 가 려주기 바쁜 손들이었다. 그리고 홀로 투어를 신청한 나와 또 다른 혼자온 여성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온 남성과 함께 조 를 이루어 일정을 시작했다. 가이드의 참석자 이름 호명이 시 작되었고, 모두들 OO님 외 1명으로 불리우다가 내 이름 석자가 불려졌다. 오랜만이다. 


가빈이 엄마, 키키 엄마, 산모님으로 불리우다가 낯선이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 그게 뭐라고 기분이 좋아졌다. 한번은 딸 아 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와 함께 티타임을 가졌는데, 3시간 가 량의 수다를 떨었음에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유나 엄 마’, ’가빈이 엄마’로 부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보 니 3시간 넘게 서로 호감을 갖고 이야기를 나눈 사이인데 이름 하나 모른다는 것이 슬펐고 또 미안했다. 그러고보니 어린이집 반편성 후 학부모 설명회에서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진짜 자신을 제대로 소개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 는 준기 엄마에요. 반가워요.” 그에 나는 “안녕하세요. 저는 가빈이 엄마입니다. 반갑습니다.”로 화답했다. 그 자리에 모인 6명 모두 누구 엄마이기 이 전에 각자의 이름이 있었을텐데 말 이다. 조금 세련되게, “박가빈 엄마 나하나입니다.”라고 말하 지 못한 내가 아쉬웠다. 그래 아쉬웠다는 표현이 적당할테다. 


재작년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 다. 여고동창들끼리만 간 것이라면 최고의 여행이었을테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사치였다. 각자 꼬꼬마 한 명씩을 데 리고 여행이라기 보다는 극기 훈련을 떠났었다. 그때 친구 희영이는 고작 6-7개월 된 꼬맹이 둘째까지 데리고 왔었다. 여자 4명이 아이 다섯을 데리고 온터라, 3박 4일 짧은 기간이었지 만 기억나는 에피소드들이 정말 많다. 


그 중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온 희영이의 첫째 딸 지완이의 귀 여운 표현은 여행 내내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름을 부 르면 대답을 하지 않았고, ‘와니공주님’이라고 해야 대답했다. 또 ‘엄마’라 부르지 않고 ‘와니엄마’ 혹은 ‘지와니엄마’라고 했 다. 어찌나 그 모습이 웃기던지, 그 말이 계속 듣고 싶어 지완 이에게 “완아~ 엄마 어디있어?”를 수시로 묻곤 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어느새 누구의 엄마로 불리고 있는 우리들의 모 습에서 익숙하지만 낯섦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지완이는 동생이 생겨서, 누구보다 엄마를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에 ‘와니 엄마’라고 콕 찝어 부른게 아닐까 싶다. 지 금의 가빈이가 나를 ‘가빈이 엄마’로 부르듯 말이다. 


다시 돌아와, 혼자 투어하는 것이 어색하려던 찰나에 홀로 이 름이 불려진 다른 여성이 한 명 있었다. 그녀 역시 아이가 둘 인 엄마였는데, 독일에서 파견근무 중이라 잠시 휴가를 내어 프라하를 방문했다고 했다. 왠지 멋있었다. 그리고 나의 가출 여행, 첫 투어에서 교집합이 있는 낯선이를 만난 것을 신기해하며 프라하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 을 때마다 이 아름다운 프라하에 남편과 두 아이 없이 혼자 걷 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기분이 좋다를 넘어서 소리 지르 고 싶을 만큼 행복했다. 그저 걷고 있을뿐인데 낯선 이 곳에서 어느덧 서른네살이 된 진짜 나를 만난 것 같아 벅찼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간 힘겹게 달려온 나를 마구마구 아낌없이 위로 해주고 싶었다. 그날 밤,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나에게 편지 했다. 




남을 위로하는 것은 쉽지만 나를 위로하는 일은 흔하지 않고 또 어렵다. 이제 다른 이를 위로하거나 애쓰기만 하지 말고 나 를 먼저 돌보고 싶다. 언젠가 이 글을 보고 이불킥 할지언정 그저 나를 보듬어주고 나를 위하고 싶다. 


남을 위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보세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회를 위해 힘을 보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요. 


-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있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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