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부끄럽다
동남아로 떠난 가족여행.
따뜻한 햇살과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멋진 리조트. 와이프가 약간 무리를 해서 예약을 한 곳이었기에 모든 풍경들이 정말 인상 깊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나니, 가장 오래 머리속에 남아있는 건 버틀러였다.
예술적으로 잘생겨서 그런건 아니었다. 30대 초반 정도로 앳되어 보이는 외모로, 깔끔하게 보였지만, 약간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만큼은 항상 올곧았다. 버틀러의 도움으로 우리 가족은 멋지지만 낯설던 공간이 점점 더 편안해졌고, 곧 충분히 리조트를 즐길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센스가 있는 친구가 성실하기까지 한 느낌이었다.
그런 버틀러를 보며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렇게 성실하고, 인상도 좋고, 센스까지 있는 친구가 한국이나 더 경제적으로 윤택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난 저렇게 못할꺼 같은데...'
하지만 그와 더 오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곧 부끄러움을 느꼈다.
버틀러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토록 밝게 미소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아이들과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웃는 그의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버틀러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의 눈은 어두운 밤이지만 빛나고 있었다.
'좋고 성실한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이든 삶의 의미를 찾아 가는 구나'
한 개인이 행복해지고, 자신의 뜻을 펼치기에 딱 맞는 시간과 공간이 있을까?
어떤 시대, 어떤 공간이든, 그 상황 속에서 인간은 극복해야 하는 삶의 역경과 찾아야 하는 삶의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
그것을 찾는 사람이 있고,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게 아닐까.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하며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사람과,
삶이 충만하고 의미있으며, 그 안에서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은
항상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있었으니 말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분 좋은 미소로 날 대해주던 버틀러에게서 내가 본건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다.
그는 내게 그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가 그렇게 밝게 미소 지을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했다.
나도 그런 미소를 지을 때가 있는지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