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강아지의 발톱을 자르던 날이었다.
직장을 다니지 않을 땐 하루에 산책을
3-4시간씩 했으니, 발톱을 자를 일 없었다.
지금은 하루 세 번 산책을 나가도 시간이 짧다.
예전처럼 산이나 호수 공원 같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진한 올블랙 모색을 자랑하는 강아지는 발톱도 새까맣다.
혈관이 전혀 보이지 않아 발톱을 자를 때마다 난감했다.
조심조심 자른다고 잘랐는데,
꺙! 하는 비명 소리가 났다.
강아지의 발톱이 짧게 잘라진 탓에 피가 났다.
그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됐다.
동물병원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병원에서도 주저앉을 만큼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문제보다
문제를 일으킨 내가 더 무서웠다.
실수는 고칠 수 있지만,
나는 늘 나 자신을 고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날, 나는 정신적으로 박살이 난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남자친구가 함께 있었다.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떨고 있는 강아지를 안아
다독여주며 발톱을 지혈했다.
그리곤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지금 병원에 갈까?
아니면 일단 좀 더 지켜볼까?"
그 질문에는 비난도, 초조함도 없었다.
그저 선택지가 있었다.
나는 패닉 상태였지만
그는 패닉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밤이 늦었고,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듯했다.
일단 좀 지켜보겠다고 답했다.
나는 밤새 강아지 옆에서 뒤척였다.
계속 아플까 봐, 지혈이 안 될까 자꾸 살폈다.
그런 내가 유난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그날 밤 내내
혼자 자책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정이 됐다.
내 생각과 내 마음, 내 행동을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같이 불안을 공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불안이 전염되지 않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였다.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사랑을 배웠다.
그래서 안전이 오면 오히려 의심부터 했다.
'결혼'과 '가정'이라는 단어는
책임과 의무에 짓눌리는 이미지였다.
안전한 공간이라기보다 생존의 연장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과 함께 지내며
나는 처음으로 다른 형태의 일상을 보았다.
불안이 극도에 달하면서
나는 손목을 아프도록 말고 꺾고 잔다.
몸은 최대한 웅크린다.
티라노 수면 자세다.
그는 내 불건강한 수면상태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새벽에 눈을 뜨면,
조용히 내 손목을 풀고 다리를 펴줬다.
주말 아침, 깨우지 않고
강아지들과 산책을 다녀오는 사람.
같은 공간에서 각자 공부하고
잠깐의 대화로 충분한 시간.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운동을 가고 별일 없이 하루를 마치는 것.
특별하지 않아서 내게는 특별한 풍경이었다.
이게 가정이라면,
나는 한 번쯤 가져보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요청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사람이었다.
혼자서 다 해결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짐이 된다고 믿었다.
모친을 신고했던 그날도,
그는 집에 오겠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언제나처럼 혼자 이겨내려고 했다.
그러다 결국,
와달라고 말했다.
내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미 잠들었을 시간이었지만
그는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나는 늘 받는 게 어려웠지만,
그날은 받아졌다.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나는 의지하고 있었다.
아주 친한 친구가 한 말이 있다.
세상에 단 한 사람의 내 편이 있다면,
인생은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단 한 사람이 '나 자신'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무조건적인 내 편이라는 건
차원이 다른 든든함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만남에 대한 책임과 의무보다는
함께라서 함께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첫인사를 드렸다.
화목하고 밝은 가족이었다.
솔직히 어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 안에 내가 있다는 게 낯설었다.
가족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숨기지 않았다.
명확한 단어들을 골랐다.
"가정폭력, 금전착취, 법적절차 진행 중입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고단 했겠네. 더 잘해줘야겠다.”
돌아온 말은 동정이 아니라,
어른의 문장이었다.
“친구는 많아요?”
“네. 저는 친구가 좀 많습니다.”
"아유. 우리 애는 친구가 없는데."
다 같이 웃었다.
그 후로도, 나의 가정사에 혹시라도 상처되는 말을 할까
말씀 하나하나를 고르시는 게 느껴져 죄송하면서도 감사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이 가족 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색하게, 천천히, 그래도.
나는 오래도록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췄다.
그 단어에는 늘 공포가 달라붙어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감정들이,
생존을 요구하는 날들이.
지금의 나는 가족의 다른 형태를
배우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날에 대한 걱정보다는
'설렘'이 좀 더 커지기 시작했다.
다음날 밤, 뜻밖의 메시지가 왔다.
막내 동생이었다.
“누나, 우리 조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