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누나, 우리 조카 생겼다.”
휴대폰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축하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았다.
기쁜 소식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놀랍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구나.
그게 다였다.
좀 더 노골적인 솔직함을 곁들이자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였다.
조카는 그 가정에서 태어날 것이다.
어떤 가족을 경험할지 대충 예상은 된다.
하지만 그 삶은 나와는 무관하다.
그래서 나는 조카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같은 날, 나는 새로운 가족에게 인사를 드렸고
큰 동생은 새로운 가정을 만들었다.
우리는 같은 단어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마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큰 동생과는 작년 여름부터 연락을 끊었다.
내가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절연 후,
그들의 통제와 집착의 일부가 그쪽으로 향했다.
그게 날 향한 원망으로 변했다.
물론 다른 문제도 있었지만,
자주 내게 모친의 성향으로 인한 피해를
토로했던 걸 떠올려보면 영향이 클 것 같았다.
K-장녀가 사라진 빈자리에
내몰린 장남에게도 가장 만만한 것이 누나였다.
막냇동생은 막내라서
책임과 의무에서 회피할 수 있었지만,
장남은 쉽지 않았으리라.
막내가 보낸 메시지는
큰 동생과의 화해를 말하는 듯했지만
내게는 압박처럼 느껴졌다.
한 가지만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전처럼 이해받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피는 이어져 있지만
삶은 함께 흘러가지 않는다.
그 사실이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쉽게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평생을 직접 겪어봐서 안다.
나는 이제 그 다음 챕터를 준비 중이다.
'직계존속'이라는 이유로 내 거처, 혼인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을 만한 싹을 모두 잘라낼 예정이다.
내 배우자와 새로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관계등록부 교부 제한 신청을 해야한다.
주민등록 열람 및 등·초본 교부 제한도
필요하다면 할 예정이다.
그토록 바랐던 일이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법적 기록이
남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앞으로도 나는 예전처럼 참지 않을 생각이다.
나에게 이토록 무례한 존재들에게.
한동안 나는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를
혈연 안에서만 이해했다.
세상에 나와 관계들을 겪어보니
그 유형은 생각보다 흔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르시시스트를 겪었단 걸 알았다.
나는 꽤 오랜 시간 '한 사람'때문에
수없이 많은 질문을 오래도록 했던 적이 있다.
또래 친목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고,
그 간극을 사랑으로 덮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너와 달라. 나는 감정이라는 게 있다고.
넌 차갑잖아. 넌 논리와 이성만 따지잖아."
내가 T라서 좋다던 그 T남자는
내가 감정이 없는 로봇이라고 했다.
싸울 때마다 그는 내 성향을 공격했고,
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썼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지금 네가 하는 거, 가스라이팅이야.”
그 한 문장이 나를 무너뜨렸다.
누구보다도 가스라이터를 싫어하는 내가
가스라이터일지도 모른다는 건.
그때 나는 내가 나르시시스트인가?
가스라이터인가? 와 같은 질문에 사로잡혀있었다.
참으로 무서운 질문이었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모친과 닮아있다면,
나는 살아갈 의지가 사라질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을 점검했다.
누군가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적은 없었는지.
솔직히 말하면,
완벽하게 자유롭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 관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그를 나르시시스트라고 규정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나는 그 관계의 비정상을 깨닫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에세이의 전체를 따지고 보면,
많이 쓰이는 문장이 있다.
<나는 이제 안다.>
<나는 깨달았다.>
이 두 가지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경찰에 신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에세이 속에 등장하는 깨달음은
오래된 것들이었다.
절연하겠다.라고 다짐한 때부터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는데
혼자 곰곰하게 생각한 것들은
절친과 대화하며 정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뭐, 맨날 깨닫고 있노.
1일 1 깨달음이냐?”
맞다.
매일 통화를 1-2시간씩 했으니,
진짜 1일 1 깨달음이었다.
그만 좀 깨달으라는 친구의 말에
내가 웃으면서 답했다.
"안 깨닫는 거보단 낫잖아."
요즘은 깨달음이 뜸하다.
치열하게 3년 정도 깨달아서 그런가.
솔직히 말하면, 거창한 진리는 아니다.
'내가 그땐 왜 그랬지?'로 시작하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로 알게 되고,
'또 안 그러면 되지~'하고 깨닫는다.
깨달음을 빙자한 다짐들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특수한 가정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불행을 전시한 글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에서 한 번이라도
자신을 잃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꼭 부모가 아니어도 된다.
연인이어도, 친구여도, 동료여도.
우리는 한 번쯤 휘둘렸고,
한 번쯤 휘두르기도 했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조금 웃으면서
덤덤하게 말할 수 있다.
조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밤,
나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 집의 미래를 상상하지도 않았고
내가 돌아가야 할 자리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을 만든다.
나는 내가 선택한 자리에서
관계를 다시 배우고 있다.
그게 전부였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한 번쯤은
그런 관계 안에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지금도 그 안에 있거나.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
익숙하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