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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감옥

산후우울증의 시작

by 우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산후도우미와 남편의 출산휴가가 끝난 후 남편의 퇴근 전까지 오롯이 혼자만의 육아가 시작됐다.


신생아는 하루에 20시간을 잔다고 하는데, 우리 아가는 잠이 없는 편에 속한 것인지 12시간을 겨우 넘기곤 했다. 밤에는 여전히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젖을 달라고 보챘다. 아이가 울고 보챌 때 나도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눈도 못 뜬 채 아기를 안아 젖을 물린다. 모유수유의 단점이다.


낮에도 별 반 다를 바는 없다. 기저귀를 교체하고, 젖을 물리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맘 편히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없다. 모유수유를 지속하려면 누구보다 잘 먹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고, 대충 한 그릇에 담아 욱여 넣기 바쁘다. 아기띠를 한 채 볼일을 보거나 아기를 화장실 앞에 눕혀두고 우는 아기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엄마 여기 있어~! 엄마 목소리 들리지~ 엄마 보이지!”


엄마에게도 인권이 있던가. 친구들에게는 “나 요즘 화장실 문 열고 볼일 보잖아, 인권 따윈 없어!” 웃으면서 말하지만, 사실 속은 울고 있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한 탓에 온몸이 고장 났지만, 고장 난 몸을 고칠 여유는 없다. 내가 먹은 식기, 내 머리카락, 아기의 침 등이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다. 집이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나는 아기띠를 한 채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깨끗하게 청소된 집을 보면 뿌듯해질까. 꽉 찬 수건함을 보면 만족감이 느껴질까. 정답이 없는 육아를 하며 어떻게든 만족감을 느껴보려고 발악해 보지만 그게 좀 갇혀 있는 것 같다.


내가 만든 감옥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털썩 주저앉아 울지 않으려고 버틴다. 거울 속에는 잔뜩 살이 찐 채 무너진 코어로 서 있는 볼품없는 여자가 보인다. 어느새 내 모습은 사라지고, 거울이 쳐다보는 후줄근한 차림의 나. ‘엄마’라는 단어가 나를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듯 하지만, 거울 속 내 모습에 울음을 삼킨다.


사회적 규범이나 성별에 대한 기대, 그냥 단순한 생물학적인 이유들이 나도 나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인지 항상 날이 서 있다. 정말 항상.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머리가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아기를 낳기 전처럼 말이다. 말을 하다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말문이 막히고,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까먹는 바람에 결론 없는 말이 반복된다. 짐을 챙겨서 밖에 나가면 두어 개를 꼭 빼먹는다. 이제 정말 멍청해졌다. 다시는 똑똑하거나 행복하거나 날씬해질 수 없을까 봐 정말 두렵다.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이 아이를 낳은 일이라고 하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외로운 일인지는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산후우울증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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