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가 되면 안 되는 사람

by 우연

산후우울증은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 남편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고, 우는 아기에게 소리 지르는 날이 늘어갔다.


나를 보고 웃는 아기는 사랑스럽지만, 나에게만 매달리는 아기가 버거웠다. 아기가 우는 것처럼 나도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그럴 공간도 없다.


모유수유를 하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밥을 차려 먹는 것도, 남편의 밥을 준비하는 것도 귀찮다. 아기의 밥을 준비하고 먹이는 것도 스트레스다. 남편도 아기도 다 보고 싶지 않고, 그저 조용한 방에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늘어간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딱 6시간만 깨지 않고 자고 싶다.


‘남편도 힘들겠지.’


바깥일을 하고 들어와 집에서 육아에 참여하는 남편도 지칠 터. 남편이 안쓰럽게 느껴져 안아주고 싶다가도 이내 또 삐딱해진다.


‘당신은 그래도 나처럼 24시간이 통째로 바뀌지 않았고, 사람들과 대화도 하면서 낮에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잖아.‘


부부상담이 먼저일까, 나의 정신과 치료가 먼저일까. 남편이랑 싸울 땐 다 그만하고 싶고, 하루에도 수십 번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한다. 나의 우울이 해결되면 부부관계도 다시 좋아질까. 부부관계가 좋아지면 나의 우울이 해결될까. 무엇이 먼저일까.


아내는 돕는 배필이라는데, 지금은 누굴 돕고 싶지 않다. 그럴 여유도 없다. 그냥 고요한 물속에 들어가 내 숨소리만 듣고 싶다.


엄마가 되면 안 되는 사람이 엄마가 된 것 같고, 아내가 되면 안 되는 사람이 아내가 된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3주 만에 글을 씁니다. 산후우울증이 꽤 오래 지속되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써 내려가면 답답함이 조금 해소되는 듯 하지만, 잠시뿐입니다. 지금은 연재를 잠시 쉬고 마음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기를 빌어주세요.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8화산후우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