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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

by 우연

삼십여해를 사는 동안 나는 우울할 틈이 없었다. 우울증은 여유로운 사람들이나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삶이 여유로우면 우울증이 올까.’


치열했던 내 삶에 우울이 들어올 틈은 없었다. 오만함이었다. 산후우울증은 아주 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와 내게 자리 잡았다. 가까운 사람이 산후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나는 사정없이 욕을 했다.


‘애를 둘이나 낳고 자살이라니. 이렇게 책임감 없는 엄마가 어디 있냐. 이럴 거면 낳지를 말던가. 애들은 무슨 죄야.‘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아이들의 나이는 고작 3살, 5살이었다. 아이들 아빠의 엄마가 그늘 없이 키우려고 노력했지만 엄마 없이 자란 아이들에게 그늘이 없을 수 없다. 지금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인 아이들. 만날 때마다 엄마의 부재로 어딘가 결핍된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 나는 그들이 안쓰러웠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엄마의 무책임함에 화가 났다. 그게 내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내가 아이를 낳았다. 나만 믿고 세상에 발을 들인 아이는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아이와 함께 집안에 갇혀 있는 시간은 숨이 막혔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이, 하루 종일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네 마디다.


“엄마 여기 있어!”

“잠깐만!”

“엄마 간다.“

“아이고 미안해.”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시기에 입원한 아이를 간호하느라 몸조리를 못한 탓에 몸은 여기저기 망가진 소리를 냈다. 물병 뚜껑조차 열지 못해는 유리 손목이 됐고, 실내화 없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발바닥을 가지게 됐다. 이뿐인가. 코어가 무너진 채로 아이를 계속 안으니 허리와 어깨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예쁜 아이지만, 보고 있는 것이 답답했다. 하루 종일 대화 한 마디를 못한 답답함, 북받치는 서러움에 남편에게 쏟아냈던 말들.


새벽에도 두세 시간마다 깨는 아이를 달래고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잠을 잘 자지 못해 예민해진 탓에 남편과 다툼이 잦아졌다. 아기가 찾아왔을 때 느꼈던 기쁨과 행복은 잊어버린 채 사랑의 결실인 아이가 불행의 씨앗처럼 느껴졌다.


‘너만 없었으면.’

‘내가 애를 왜 가지고 싶어 했을까.’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았다. 아기가 예뻐 보이지 않았고,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입을 막고 싶었다.


“악! 울지마!! 그만 울어!!!“


우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더니 아이가 내 눈치를 본다. 눈치 보는 그 찰나가 미안해져 아이를 부둥켜안고 나는 또 운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 부족해서 미안해, 엄마가 피곤해서 미안해. 엄마는 빵점 엄마야.”


아이를 베란다 창 밖으로 내던졌다는 뉴스기사를 볼 때 미쳤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생을 마감한 사람을 볼 때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무서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는 내가 무서웠고, 이런 내가 아이를 어떻게 할까 봐 두려웠다.


‘사람이 죽으면 온몸에서 모든 노폐물이 나온다는데, 구강기인 내 아이가 그걸 먹고 아프면 어떡하지? 백일을 갓 넘긴 이 아이가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다면 그걸 기억할까? 혹시 그게 트라우마로 남으면 어떡하지? 우리 아이에게도 그늘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건 안 되지. 내 아이가 아프면 안 되지. 내 아이를 트라우마 속에 살게 할 순 없지.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에게 그늘이 생기게 할 순 없지.‘


나를 죽음까지 몰아넣은 아이가 나를 또 살게 한다.


매일매일 치열한 하루를 버티기 위해 애쓴다. 우울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 보이지만, 이미 나를 집어삼킨 우울이다. 우울에 잠식당한 삶이지만, 아이에게 그늘이 생길까 두려워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보며 애써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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