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의 핵심은 목표와 청자
4주차, 처음으로 야심차게 온 힘을 다해 준비한 내 기획을 들으신 담당자분이 나에게 주신 피드백은 이랬다.
"저는 학부랑 MBA 주전공이 재무인데, 지금 우연님이 가져 온 기획안은 대학생들이 배우는 재무 회계 한 학기 정도 배운 수준으로, 금융업을 하겠다는 말인데 그렇게 얕은 지식으로 사업이 될 수 없어요, 벤처라서 안된다는 말은 최대한 안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네요, 이 사업은 안되요"
3주차까지의 우리의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도출했던 8가지의 아이디어 중 4가지를 추렸고, 개인의 아이디어들 중 하나씩 도맡아 발전 시켜보자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다른 멤버들와 주관부서 팀장님선 정도까지 러프하게 공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시켜 오는 것이였는데 첫번째 드디어 무언가를 메이드 해보는 경험이였다. 다음주면 드디어 선정된 엑설러레이터가 합류 예정이였는데, 대부분 엑설러레이터와 벤처캐피탈 역할을 같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아이디어들을 실제 시장의 투자자 관점에서 평가받아보자는 목적도 있었다. 항상 뻘쭘하고 약간 알맹이(?)없다고 느껴지던 인사치레 킥오프가 조금 더 알찬 자리가 되지 않을까 효율적이고 영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기획안, PPT자료를 만드는 핵심은 목적과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같은 말만 하는거 같고 원론적이고도 이론과 같아서 그걸 누가 모르냐 할 수 있지만, 당신의 작성하려는 제일 중요한 것은 문서의 목적이다. (벤처를 하면서도 매순간 매단계마다 이런 목적, 목표나 비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 다음은 보고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왜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 하느냐면 누구나 알고있는 이론이기에 오히려 간과하기 쉽고, 특히나 초반보다도 어느정도 일이 능숙해지는 때에 이걸 잊기가 참 쉽다. 나의 예를 들어보면 어느새 5년차 일노비가 되다보니 상사가 뭔가 과제를 주면 나의 알고리즘은 이렇게 작동한다.
선배님이 쓰신 자료나 내가 전에 작성한 자료 중 성격이 가장 비슷한 파일 찾기 시작
-> 켜서 대충 컨텐츠만 바꿔서 복사하고 껴맞춰서 자료를 완성
EX) 사과 깎는 기계 개발 기획안_180321_본부장님 보고용 이라는 기획안 자료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사로부터 22년, 아보카도를 기계 기획안 작성해보라고 지시를 받았다.
"아! 전에 봤던 선배님의 사과 깎기 기획안"이 떠오르면서 김대리는 칼퇴를 예감한다.
사과를 아보카도로 바꾸고, 현재 시장 상황으로 수치를 대충 찾고 바꾸며 아보카도에 맞는 솔루션(ex.기계 스펙) 조금 수정하고는 오예!를 외친다.
물론 이 방법은 그동안의 노고와 세월을 토대로 다져 놓은 잔머리를 이용한 아주 효율적인 모든 대리들의 다년간의 노하우기 때문에 아주 특급 노하우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만들면 80점은 보장되지만 운이 좋아 모든 상황적 요소가 같지 않는 한, (여기서 상황의 요소란 1. 과제 발생 배경 2. 현황(내/외부) 3. 보고 받는 자 )그 이상의 점수를 받긴 힘들다.
평타는 언제든 칠 수있지만, 사활을 건 홈런 한방이 되어주진 못한다는 말이다. 큰 틀은 이런 저런 경험으로 다져진 잔머리를 쓰되, 아까 언급한 보고서의 본질을 잊으면 안된다. 보고 목적과 보고 받는사람. 적어도 이 요건이 동일하지 않다면 김대리의 스스로 터득한 잔머리는 빛나지 못한다. 그런 기획성 문서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대충 이런흐름으로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많은거 같다. (뭐..아닐수 있음 주의)
환경분석(시장,고객) -> 문제 도출 -> 솔루션 제안 -> 기대효과
김대리가 킥이 될만한 홈런 한 방 날려보고 싶다는 문서라고 생각하면 제일 먼저 이걸 떠올려야 한다.
보고서가 왜 필요하고 누구를 위한 자료인가?
같은 팀으로 현안에 대해 배경지식 수준이 비슷한 팀장님이 보실 자료인지, 아니면 이 현안에 대해 잘 모르지만 결정을 내려야 하는 본부장님이나 그 이상의 경영진에게 보고 되는 자료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대표이사 급이 봐야 하는 보고 체계 상단의 자료인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경영기획(관리)팀에 가는 자료인지, 실제 기획된 내용을 도맡아 운영할 현업(공장,시행부서 등)에 공유될 자료인지 목적과 청자에 따라 자료는 천차만별로 내용이나 앞뒤로 추가되어야 하는 내용이 생기기도 항목별로도 강조되어야 하는 포인트가 달라진다.
단순 기획 내용이 궁금한 팀장님 자료라면 환경분석이나 문제도출은 생략 혹은 간결하게 작성하되, 솔루션에 집중해야하고 가능하다면 솔루션과 기대효과만 한장으로 간단히 정리해도 상관없다,
반대로 현안에 대해 잘 모르는 상위단이라고 하면 환경분석이나 문제도출에 대해서도 비교적 탄탄하고 논리적으로 비춰줄수 있게끔 작성해야 하며, 특히 해당 보고의 목표가 의사 결정이라면 보고 받는 자로하여금 기대효과가 정성적이기 보다는 가시적으로 보이며 투입비용이나 가용 예산 범위 등 정량적으로 판단이 가능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게 작성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제 운영을 위한 현업에게 선보이는 자리라고 한다면 같은 기획안이라도 솔루션이 더욱더 사용자/제공자 관점에서 딥하고 디테일하게 적어 두어 곧바로 어떤 상품/서비스/시스템인지 느낄 수 있도록 작성되어야 한다. (더 디테일한 섹터별 내용은 다음 언젠가 기록하게 될 경영진 보고자료에서 더욱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이처럼 보고서로 이루어 내고자 하는 목적이나 청자에 따라 보고서는 천차 만별로 달라진다. 그렇게 나름 이제는 신입 쫄보시절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자신있고(?) 야심차게 적었던 나의 기획안은 사내벤처 4주차, 담당자분이 나에게 주신 피드백에 의해 사장되었다.
"저는 학부랑 MBA 주전공이 재무인데, 지금 우연님이 가져 온 기획안은 대학생들이 배우는 재무 회계 한 학기 정도 배운 수준으로, 금융업을 하겠다는 말인데 그렇게 얕은 지식으로 사업이 될 수 없어요, 벤처라서 안된다는 말은 최대한 안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네요, 이 사업은 안되요"
내 아이디어가 하필이면 담당자분의 전문 분야에 관련된 아이템이였고, 나는 그쪽에 문외한이였으므로 아무리 반박왕인 나지만, 저 피드백에 반박할 논리도 여지도 없었다. 그렇게 모르는 분야지만 여기저기 뒤져가며 열심히 논리를 쌓고 설득하기 충분하다고 자신만만하게 준비했던 나의 사업 아이템은 조금은 씁쓸하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음주 드디어 1년간의 파트너인 AC사와의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