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벤처 지원부터 면접까지의 기록
면접관이 내게 물었다.
"사내벤처가 왜 잘 안 되는 줄 아시나요?"
그리고 면접관의 대답은 내 뇌리에 꽤나 인상 깊게 남았다.
"해보겠다고 지원하시는 분들의 목표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대기업의 사내벤처라고 하면 보통 지금 조직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커리어 점프나 개발이 필요해서 오는 사람, 혹은 다른 가고 싶었던 팀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생각하고 사람들이 지원해요, 어떻게든 '사업 성공시키겠다'라는 목표를 가져야 되는데 사내 벤처니까 굳이 성공 안 해도 월급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잘 안되는 거예요 덜 배고프고 간절하지 않으니까"
때는 바야흐로 두 달 전, 출근을 앞둔 어느 일요일에 나는 생전 처음 교통사고가 났다.
나름 무사고 따릉이 운전자였는데, 내리막 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하려다가 봅슬레이 마냥 슬라이딩하며 넘어졌다. 상처도 잔뜩 나고 잠시 벤치에 앉아 쉬었지만 결국 가려던 길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 바로 앞 건널목에서 이번엔 자동차와 따릉이를 탄 내가 부딪혔다. 안 그래도 30여 분전에 방금 넘어져서 멘붕상태였는데 이젠 차와 부딪히다니!
그 부딪히는 찰나의 순간 '어어어, 나 또 넘어져,,?! 근데 어랏,, 이번엔 자동차네 큰일인데,,?' 아주 잠깐이지만 몸이 붕뜨는거 같은데 이다음은 어떻게 되나? 오늘이 설마 내 인생 마지막 인가?', '진짜 망했다, 그래도 살겠지?'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들만큼 아찔했다. 다행히 두 번이나 연속으로 넘어진 덕분에 가졌던 정신적 충격보다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보험사를 부르고 난생처음으로 '교통사고 수습하는 방법'이라는 경험치를 강제로 터득하게 되는 날이었다.
그렇게 현장 조치를 마치고 넋을 잃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데, 10분 남짓한 거리를 거의 1시간을 걸었다. 정말 평소에 단 한 번도 안 해봤던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이 끝난다면 혹은 내일이 없다면 이라는 생각 , 쾌속질주에만 집중하는 어리석은 내게 잠시 하늘이 제동을 걸어준 건 아닐까 라는 운명론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다음날 나는 출근할 수 없었고, 곧장 보험 처리를 위한 병원에 갔다. 정신없던 어제 덕분에 출근을 못했던 사실을 알 길이 없는 회사 동기에게서 아침에 카톡이 왔다.
'이거 봤어? 이거 너랑 딱일 거 같아서 보낸다, 지원해봐 봐'
그렇게 회사에는 사내벤처 공고 포스터가 곳곳에 붙고 메일링 된 날,
남들과 달리 나는 멘붕인 상태로 회사가 아닌 병원에서 사내벤처 공고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NFU231 모집
(*NFU231 : 사내벤처를 통해 유니콘 기업을 만들고, 23년까지 기업가치 1조 원 달성 목표로 함)
지원 혜택 : 스타트업 빌딩을 위해 필요한 전범위에 대한 교육지원, 외부 VC/AC인력 제공, 발령을 통한 기존 업무 완전 배제, 독립 사무공간 제공, 독립법인 분사, 스핀오프 지원 혹은 1년 후 원하는 부서 배치 / 사업 성공 시 1,xxx만 원 격려금 지급 / 지원과정 철저히 비밀 보장
사내벤처 지원서 마감 전 날, 드라마처럼 두 번째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팀 선배님 중 한 분께서 갑작스러운 번개 회식을 제안하셨고 마감 전날 밤, 오늘은 정말 사내벤처 지원서를 쓰겠다던 혼자만의 계획은 술을 사랑하는 내 자신에 의해 무산되었다.
알고 보니 최강 술꾼 삼대장이었던 분들과 함께한 그날 밤의 기억은 나에게 없다... 그렇게 아침은 밝았고 지원서를 쓸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을뿐더러, 29년 인생 중 맛본 숙취 중 가장 심각한 날로 기록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도, 먹지 못하는 상태의 내가 되었다. 다행히 오늘이 지원서 마감날인 것을 기억났다. (술이 덜 깨서 술술 써졌을 수도,,)
아찔했던 교통사고를 통해 쾌속 질주에만 주력했던 29년 인생에 대해 처음으로 강제지만 진지하게 돌아봤다. 마감 전 날의 객기 어린 두 번째 사고(?) 덕분에, 이제는 나의 흑역사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잠깐 조직을 벗어나 봐야겠다는 간절함까지 한 스푼
더해졌다. 그래서인지 가까스로 제출한 지원서로 면접을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면접날이 돼서야, 과연 내가 지금 잘하는 결정일까? 그럼 이득이죠 라고 받아쳤던 아저씨들의 '1년이나 자리를 비우면 돌아올 자리 없다' 던 농담도 떠올랐다. 지금 하는 일들도 사람도 조직도 이제야 비로소 안정적으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안정감을 갖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 아는데, 또다시 나를 불안정으로 밀어 넣는 선택이 옳을까? 등 내가 지원하여 마주하게 된 면접 대기 동안도 고민과 번뇌의 연속이었다.
아마 시간상 1번 면접자였던거 같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넌 네 생각을 말로 잘 못하는 게 가장 문제"라던 선배님들의 우려와 다르게 내가 생각해도 야무지게 대답을 잘했던 거 같다 (살면서 내가 말을 잘하고 있다 라는 느낌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 날, 면접에서 가장 머릿속에 깊게 남았던 것은 면접관의 질문이었다.
"사내벤처가 왜 잘 안 되는 줄 아시나요?"
"해보겠다고 지원하시는 분들의 목표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대기업의 사내벤처라고 하면 보통 지금 조직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커리어 점프나 개발이 필요해서 오는 사람, 혹은 다른 가고 싶었던 팀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생각하고 사람들이 지원해요, 어떻게든 '사업 성공시키겠다'라는 목표를 가져야 되는데 사내 벤처니까 굳이 성공 안 해도 월급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잘 안되는 거예요 덜 배고프고 간절하지 않으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사내벤처를 하려고 했을까?라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며, 아 떨어졌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면접장을 나왔다.
그렇게 나는 사내벤처 1기가 되었다는 합격 전화를 받았다. 그때의 심정은 기뻤다기보다는 교환학생 가기 하루 전, 심정과 비슷했는데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조직이었고 회사였지만 막상 안정적이었던 조직 밖으로 나간다고 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그렇게 시원섭섭한 뭔지 모를 기분과 함께 스물아홉의 끝자락에 나는 사내벤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