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 그 시간의 질감
손가락으로 ‘딸깍’ 누르는 재생 버튼,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 90년대 중반, 내 열세 번째 생일에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삼성 마이마이를 처음 열었을 때의 손끝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는 나에게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LP 전축이 있었지만, 개인용 음악 기기는 처음이었다. 반짝이는 새 마이마이의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었을 때의 그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마이마이를 손에 쥐었을 때의 그 감각을 잊을 수 없다. 가벼운 플라스틱의 감촉, 버튼을 누를 때 느껴지는 명확한 '딸깍' 소리, 그리고 배터리 덮개를 열 때 나는 특유의 플라스틱 마찰음까지. 내 또래 친구들이 워크맨을 자랑할 때, 나는 조금 구식이지만 더 특별한 무언가를 가졌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진정한 프라이빗한 음악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가족과 함께 거실에서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틀어놓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마이마이는 달랐다. 그것은 오직 나만의 음악 세계였다.
고등학교 2학년 생일, 아버지는 나를 강변 테크노마트로 데려가셨다. "네가 원하는 걸 골라봐." 그의 말씀에 나는 설렘으로 가득 찼다. 수입상가를 돌아다니며 우리는 마침내 그것을 발견했다.
파나소닉 미니컴포넌트.
은빛 바디에 푸른빛 디스플레이, CD 플레이어와 카세트 데크가 결합된 그 기기는 마치 미래에서 온 듯했다. "이거 어때?"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의 기쁨과 감사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집에 돌아와 미니컴포넌트를 설치하던 날, 나는 밤새 음악을 들었다. 마이마이의 개인적 청취 경험과는 또 다른, 방 전체를 울리는 풍성한 사운드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내 음악 세계의 확장이었다.
새 미니컴포넌트 덕분에 믹스테이프 만들기는 더욱 쉬워졌다. CD에서 바로 테이프로 녹음할 수 있었고, 라디오 방송도 더 선명하게 잡을 수 있었다.
특별한 날이면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음악을 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듀스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마다 우리는 열광했다. 그 시절 우리는 음악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우정을 키워갔다.
그녀에게 건넨 믹스테이프에는 내 마음을 대신 전하는 곡이 담겨 있었다. 젝스키스부터 핑클까지. 테이프를 꾸미기 위해 밤새 그린 재킷 커버의 사인펜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맴돈다.
고3이 되면서, 나는 MP3 플레이어가 아닌 미니 MD(MiniDisc) 플레이어를 갖게 되었다. 샤프의 은색 MD 플레이어는 카세트 플레이어보다 훨씬 작고 가벼웠으며, 디지털 음질을 자랑했다. 작은 디스크에 CD 한 장 분량의 음악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MD 플레이어로의 전환은 나의 음악 생활에 또 다른 혁명을 가져왔다. 더 이상 테이프가 늘어나거나 엉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고, 원하는 곡으로 바로 건너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물리적인 매체를 다루는 즐거움은 남아있었다. 작은 디스크를 케이스에서 꺼내 플레이어에 넣는 그 의식은 여전히 특별했다.
MD 시대는 길지 않았다. 곧 MP3 플레이어가 시장을 장악했고, 이어서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대체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MD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완벽한 가교 역할을 했다.
세월이 흘러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곧이어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무한한 음악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디지털 음악의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테이프가 끝나면 뒤집어야 했던 그 잠깐의 침묵, B면을 기다리는 설렘, 그리고 음악을 얻기 위해 들였던 노력과 시간의 가치. 우리는 무한한 접근성을 얻는 대신, 음악을 소유하고 만지는 물리적 경험을 잃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고립 속에서 나는 오래된 마이마이와 카세트테이프 상자를 발견했다. 먼지를 털어내고 새 배터리를 넣은 후, 20년 전 테이프를 재생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여전히 작동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히스 노이즈와 함께 흘러나왔을 때, 나는 시간 여행을 하는 듯했다.
마이마이에서 시작해 미니컴포넌트, M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 그리고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음악 매체의 변화는 곧 우리 삶의 변화였다. 각 시대의 기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더 고립되어 있다.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음악을 즉시 들을 수 있지만, 그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는 경험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마이마이의 재생 버튼을 누를 때마다, 나는 단순히 과거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역사와 연결된다. IMF 위기 속에서도 음악으로 위안을 얻었던 청소년기, 첫사랑에게 테이프를 건네며 떨렸던 순간들, 그리고 새천년이 시작될 때 느꼈던 설렘까지.
당신의 카세트 플레이어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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