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못 먹는 음식이 있다. 다름 아닌 라면이다. 빨간 국물의 라면뿐만 아니라 짜장라면, 비빔라면 역시 예외는 없다. 라면 종류는 아예 먹지 못한다. 사나이 울리는 맛도, 일요일마다 요리사로 만들어주는 맛도 내겐 그저 상상 속 영역이다. 나에게만 유독 예민하게 느껴지는 라면 특유의 비릿함이 금방 속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굉장히 애석해한다. 그 맛을 모르고 어떻게 사냐고. 라면 하나 못 먹는 것뿐인데 모든 미각을 잃은 것 마냥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어릴 때는 꽤나 자주 먹었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이 저녁 늦게나 집에 돌아오셨으니 그 사이 홀로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메뉴는 라면밖에 없었다. 하루 걸러 하루 라면을 끓였다. 외로움도 보글보글 끓었다. 친구들은 엄마가 해준 떡볶이며 돈가스며 맛난 점심을 자랑하면서 집으로 가버렸는데 나는 또 혼자 라면이었다. 하지만 힘들게 일하고 오신 부모님께 투정 부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열다섯 살쯤 되었을 무렵, 여느 날처럼 라면을 후루룩 삼키려는데 갑자기 멀미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드라마에서 보는 입덧 장면 같기도 했다.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위염약을 처방해 줬지만 라면만 보면 같은 증세가 도졌다. 아무래도 혼자인 쓸쓸함을 소화할 능력이 다한 듯했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라면을 먹지 않았다.
외로움을 감출 수 있는 어른이 되어 베트남 출장을 갔을 때였다. 새벽부터 정신없이 공장부지를 헤매고 나니 배 속에서 꼬르륵 쾅쾅 천둥이 쳤다. 대충이라도 점심을 때워야 마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가게로 들어갔다. 목욕탕 의자에 남루한 파라솔 테이블이 몇 개 놓인 식당이었다. 가족끼리 운영하는지 벽 곳곳에는 가족사진이 가득했다. 사진 속 사람들이 튀어나와 반갑게 나를 맞아줬다. 통역사 없이 혼자서 찾아온 터라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따스한 환대가 우려를 녹였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살폈다. 사진 없는 메뉴판에 베트남어 까막눈까지 더해져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맨 위에 있는 메뉴를 주문했다. 제일 인기 메뉴이니 맨 위에 있겠지란 생각이었다. 점원이 엄지손가락을 척 내민 걸로 봐선 제대로 시킨 듯했다.
그러나 기대는 무너지기 위해 존재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 순간 수저를 털썩 내려놓았다. 내가 주문한 건 꼬불꼬불 라면이었다. 한국에서 먹던 것과 다른 냄새이긴 하지만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걸 보니 라면이 확실했다. 하필이면 들어와도 라면 가게를 왔다. 타지까지 와서 또 혼자 라면이라니. 용기 내어 국물을 한 술 떴지만 울렁거림은 더 심해졌다. 근처 햄버거 체인점이라도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따뜻하게 맞아준 친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계산하고 나갈 생각이었다.
한 젓가락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자리를 뜨려 하자 종업원이 말을 걸어왔다. 물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순 없었다. 대충 음식이 입에 맞지 않냐는 의미이리라 추측했다. 주섬주섬 번역기 앱을 켜고 서툰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저는 라면을 먹지 못합니다. 라면인 줄 모르고 시켰습니다. 계산은 하고 가겠습니다. 신부님도 울고 갈 고백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점원은 번역기 앱에다 무어라 대답을 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해석이 들려왔다. 그리곤 식탁 위의 라면을 가져갔다. 주방 안에서는 알 수 없는 대화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멀뚱멀뚱 자리에 앉아있었다. 처음부터 햄버거나 먹을 걸, 늦은 후회만 삼켰다.
잠시 후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잔뜩 긴장해 있던 내 앞에는 노란 볶음밥이 놓였다. 튀긴 닭고기와 오크라가 들어있는 특이한 조합의 볶음밥이었다. 점원은 파란 볼펜으로 낙서한 냅킨을 함께 건네주었다. 거기엔 번역기를 돌려 적은 것 같은 한국어가 적혀있었다. ‘나의 어머니의 비밀 볶음밥. 라면보다 맛있습니다. 무료입니다.’ 뜻밖의 전개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라면을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메뉴판에도 없던 메뉴를 내준 것이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소용없었다. 식당의 온 점원들이 어서 먹으라는 듯 밥 먹는 시늉을 했다. 주방에서는 웬 아주머니가 고개를 쑥 내밀며 웃었다. 볶음밥을 만들었다는 그 어머니인 듯했다. 어쩔 수 없이 한 숟가락을 크게 삼키자 왜 비밀 볶음밥인지 단번에 이해되었다. 평생 나만 먹고 싶은 맛이었다. 혼자 먹지만 혼자가 아닌 맛이었다. 쓸쓸한 울렁임이 싹 가시는 맛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준 밥 먹으러 달려가던 친구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어 조금은 울컥하기도 했다. 낯선 이방인을 가족처럼 보듬어준 그 풍미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워버렸다.
베트남을 떠나기 전, 나는 한 번 더 그 가게를 찾았다. 혹시 몰라 한국에서 챙겨 온 통조림 반찬과 레토르트 식품을 가득 담아 전했다. 냅킨 쪽지에 대한 답장도 적었다. 언제든 한국에 오면 나의 비밀 메뉴를 대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급조된 답례에 실망하면 어쩌나 걱정이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환하게 웃어 보였다. 라면 먹고 가라던 어느 멜로 영화보다도 가슴 설레는 미소였다. 그 순간 외로움을 감출 수 있게 되었다던 어른은 깨달았다. 누군가가 내어준 작은 다정함만으로도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엔 충분하다는 것을. 이제 라면 맛을 모른다며 안타까워하던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대들은 이 다정함의 맛을 느껴보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