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고요가 절실한 순간이 있다.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듣고 있어야 할 때, 타인의 감정을 받아내느라 마음속 여력이 없을 때 그렇다. 딱 그날 점심시간처럼 말이다. 회사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 무리들은 며칠째 저마다의 사연을 내게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람피운 연인을 용서해 줄지 말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자식을 자퇴시킬지 말지, 불임 치료를 받아볼지 말지. 지극히 사적인 고민거리였다. 이걸 왜 굳이 회사 동료인 내게 털어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린 그냥 일로 묶인 사이 아니었나. 업무만 해도 숨이 찬데 남의 고민까지 신경 쓰자니 호흡곤란이었다. 듣는 둥 마는 둥, 초점 잃은 눈으로 그 시간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충동적으로 휴가를 쓴 건 그래서였다. 조용한 공간에 틀어박혀 쉼을 만끽하고 싶었다. 한옥이 좋겠다 싶어 무작정 전주행 기차표를 끊었다. 회사에는 해외여행을 갈 예정이니 시차 때문에 연락이 어렵다고 엄포를 놓았다. 쓸데없는 연락에 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날벌레가 위잉 거리는 것 마냥 거슬리던 그 하소연들을 듣지 않아도 된다니 속이 후련했다. 이제 난 온전한 쉼을 누리기만 하면 됐다.
비빔밥을 거나하게 먹고 고요함에 취해있을 때였다. 한옥의 문풍지 사이로 살랑거리는 바람에 솔솔 잠이 쏟아졌다. 한참 달콤한 낮잠에 빠져있는데 허벅지 근처에서 불편한 가려움이 느껴졌다. 실눈을 뜨고 슬쩍 보니 모기의 짓이 분명했다.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을 테니 무시하고 다시 자려는데 심상찮은 기운이 엄습했다. 잠깐 사이 모기 물린 곳이 걷잡을 수 없게 크고 단단히 부풀어 오른 것이다. 잠이 번쩍 깼다. 부랴부랴 근처 약국에서 사 온 모기약을 바르려고 보니 허벅지 반이 모기의 흔적으로 뒤덮여있었다. 한방만 물린 게 아니었다. 나란히 여러 마리에게 뜯긴 자국이 역력했다. 내 허벅지에서 모기 회식이라도 열린 모양이었다. 이제 고요한 쉼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 가려움이 온 정신을 헝클어놓았다. 결국 누워서 ‘모기 물렸을 때 빨리 가라앉는 법’이나 검색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신문 기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모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글이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모기가 어떤 사람을 선택해 공격하는지에 대해 실험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흔히 말하는 속설처럼 혈액형에 따라 무는 것도 아니었고, 어린 살이라고 달려드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 냄새' 때문이었다. 모기는 사람의 체취를 감별해 피를 빨 대상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냄새인지 모르지만 저 작은 모기조차도 사람을 가린다니. 날 선택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람 사이에도 타인을 끌어당기는 냄새가 있을까? 의외로 국어사전에는 '사람 냄새'란 어휘가 등재되어 있다. 인간다운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태도나 분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누군가 내게서 그런 따스한 냄새를 맡아줄 수 있을까? 점심시간마다 달려들어 고민을 털어놓던 동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겁도 없이 내게 속을 내보였다. 직장에서의 사회적 자아 대신 진짜 자신의 괴로움을 꺼냈다. 아마 내가 명확한 해답을 주길 기대하진 않았을 거다. 해답이 절실했다면 상담기관이든 병원이든 전문가를 찾아갔을 테니. 그저 자기가 겪은 아픔에 위로를 보내줄, 마음속 근심의 무게를 나눠 들어줄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를 직장 동료 이상으로 믿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앞에서 난 동태눈으로 귓바퀴나 긁적였다.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기에 잔뜩 뜯긴 듯한 쓰라림이 느껴졌다.
전주 여행의 마지막 날. 한옥거리에서는 모시천으로 장식한 향낭을 팔고 있었다. 편백나무 조각이 들어있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향이었다. 가게 점원은 이 향에 모기 퇴치 효과도 있다며 판매에 열심이었다. 나는 못 이긴 척 여러 개를 집어 들었다. 내게 마음을 열어준, 깊은 곳에 숨은 진심을 내보여준 그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향낭을 품에 안고 돌아가는 길. 나의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평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