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익숙한 발소리가 들린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무실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인다. 모두가 숨을 꾹 참는다. 그의 발걸음이 누구 자리에서 멈추는지 살피려 눈알만 도르르 돌아간다. 아차, 소리가 점차 내 곁으로 가까워진다. 책상 위 모니터에 그림자 하나가 쓱 드리운다. 동료 직원들은 내 자리에 와 멈춰 선 발걸음을 확인하고는 깊이 안도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당신 오늘 점심 약속 있어? 내가 끝내주는 홍어탕 집 데려가 줄게 얼른 짐 챙겨.”
모두가 그의 접근을 두려워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참을 수 없는 구취의 가벼움. 입을 열자마자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가는 입 냄새 때문이다. 책상 위에 양치 도구는 폼으로 놓고 다니나 싶다. 옆 부서 김 과장은 ‘입으로 똥을 싸는 게 분명하다’고 수군거리곤 했다. 슬픈 사실은 이 적나라한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이다. 황금 같은 점심시간에 이 인간과 마주 앉아 밥을 먹어야 한다니. 고른 것도 하필 누린내 나는 홍어다. 본인의 입 냄새가 얼마나 고약한지 자각하지 못한 메뉴 선정이다. 다 먹고 나면 얼마나 강한 악취를 풍길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겨우 입 냄새를 버티던 내게 그는 새로운 공격 수단을 꺼냈다. 자랑과 업신여김의 합동 공격이다. 그는 자신의 부를 뽐내길 좋아했다. 입만 열면 돈 자랑이었다. ‘주식 투자해서 오늘만 6천만 원을 벌었다’, ‘코인 투자 수익으로 곧 강남 아파트를 산다’는 식이다. 거기서 멈추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문제는 자신보다 부족해 보이는 타인을 한껏 내리 깎는 데에 있었다. 쥐꼬리만 한 대리 월급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 부모가 가난하게 사는 법만 가르쳐 줬느냐는 얘기들을 내뱉었다. 자신에게 천만 원만 맡기면 억 단위로 불려주겠다는 헛소리도 덧붙인다. 이쯤 되면 확신하게 된다. 그의 배설기관은 입에 몰려있다는 걸.
그나마 오후의 공기는 쾌적했다. 홍어탕을 먹고 돌아온 뒤로 그가 자리를 비운 덕이다. 전화를 받고 나가더니 한참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인사팀, 법무팀 직원들이 분주하게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무슨 일인가 갸웃하는 사이 흥미진진한 냄새가 피어났다. 옆 부서 김 과장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김 과장은 잠시 숨을 고른 뒤 홀연히 사라진 그의 행방을 전했다.
“그 인간 지금 회삿돈 횡령한 거 걸려서 튀었대!”
그의 행적에서 풍긴 구린내는 상당했다. 자녀 학자금 명목으로 회사에서 지원받은 돈을 주식에 넣었다. 하나 있는 아들은 군대에 갔으니 학자금 따위 필요치 않을 텐데 말이다. 부모님 수술비 핑계로 받은 지원금도 날름 코인에 투자했다. 그의 부모님은 지난주에도 골프를 치러 갔을 만큼 정정한데 말이다. 온갖 증빙서류를 위조해 돈을 빼냈다. 그걸 또 동료 직원들에게 떠벌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요령 있게 회삿돈을 뽑아먹어야지 월급만 받고 실실거리는 꼴이 미련하다며 사람들을 무시해 댔다. 그 허튼소리를 참다못한 직원 하나가 사내 게시판에 폭로글을 올려버린 것이다.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유레카를 발견한 듯 무릎을 탁 쳤다. 마침내 악취의 근원이 드러났다.
속부터 깊이 상한 음식은 아무리 포장을 덧씌워도 썩은 냄새가 난다. 랩을 씌우든 통 안에 넣어버린들 소용없다. 결국엔 상한 걸 들키고 만다. 사람이라고 다를 리 있겠는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내 삶의 궤적은 언젠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타인을 대하는 감정,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둘 포개져 자신만의 향을 풍기게 된다. 그러니 그에게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건 단순히 입속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남을 깎아내리는 나쁜 말들이 쌓이고 쌓였다. 자기 외에는 모든 걸 고깝게 보던 시선이 겹치고 겹쳐졌다. 입에서 나는 냄새야 양치질이라도 하면 잠깐이나마 감출 수 있지만, 인격에서 나는 냄새는 씻어낼 수도 없다. 마음가짐의 밑바닥부터 갈아엎지 않는 한 악취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헐레벌떡 익숙한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그가 돌아왔다. 사무실은 아까보다 더 깊은 침묵에 빠진다. 모두가 숨을 꾹 참는다. 그의 발걸음은 자기 책상 앞에 멈췄다. 잡히는 대로 짐을 챙겨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하루에 6천만 원 버는 사람 치고는 다급한 모양새다. 그리곤 사무실 동료들에게 인사도 없이 문밖을 나선다. 강남 아파트에 입주할 사람 치고는 도망가는 모습이 빈털터리처럼 조급하고 처절하다. 입 벌리기 좋아하던 사람이 한 마디도 없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떠난 자리엔 미처 챙기지 못한 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양치 도구도 있다. 누렇게 바랜 칫솔, 허연 가루가 파스스 떨어지는 치약. 오랫동안 닦아내지 않은 게 분명했다. 지독한 냄새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홍어탕의 진득한 열기가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오는 듯했다. 꺼림칙했던 그의 말들이 아직 내 몸에 아직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허나, 어디 그뿐이랴. 내가 먹은 양식과 마음도 언제든지 독을 내뿜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의 빈자리를 보며 그것들을 잘 다독여 내 냄새를 단속하자고 다짐한다. 다급히 서랍을 뒤져 내 칫솔을 손에 쥐어본다.